(최종 회) 제5장 관악산 유령(幽靈) - 잘 가게, 친구! /에필로그
길 교수는 죽기 전에 한 번 더 석홍의 전화를 받았다. 그가 일본으로 건너간 뒤 이 년째 되는 해의 가을이었다.
발신자를 확인한 태선은 탐탁지 않은 얼굴로 수신 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인가?”
“이보게 길 선생, 잘 있나? 건강은 어떤가?”
“걱정 마. 자네가 죽기 전엔 안 죽어!”
“건강한가 보군. 근데 난 아니네. 얼마 전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어. 수술은 겨우 마쳤는데, 영 기분이 나빠. 얼마 못 버틸 것 같아.”
“그래, 잘된 일이야. 더 살아 봐야 죄업만 더할 뿐이지!”
“여전하군, 자넨.”
그때, 시큰둥하던 태선의 목소리에 문득 생기가 돌았다.
“자네 전화를 받고 막 생각났네만, 자네 죽기 전에 꼭 할 일이 하나 있어. 속죄하는 셈 치고 들어주게.”
“그래? 무슨 일인지 말해보게!”
“지금, 이 나라에는 조직적으로 역사 반란이 진행되고 있어. 그중 제주 4.3 사건 말인데, 자네 기억하지? 우리가 남로당에서 함께 활동하던 시절에 비슬산 어느 사찰에서 들었던 얘기들, 그 왜, 제주 인민유격대장 김달삼이 밑에서 기록 병을 하였다던 사람이 와서 그랬잖았어?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서는 때로는 사람 목숨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죽일 수 있어야 한다면서, 제주 4.3 당시 인민유격대는 남녀와 어른, 아이 구분 없이 심지어는 임산부까지 총으로 쏴 죽이고, 죽창으로 찔러 죽였다고, 그 인원이 군경과 양민을 합하여 일천오백이 넘는다고 하잖았어?”
“지금 그 얘기를 왜 하는 거야, 길 선생!”
“그때 그자가 그랬지? 나중에 4.3 반란을 진압하러 온 국방경비대 11연대장 김진경 대령도 부임 한 달 남짓 만에 미리 심어놓은 남로당 프락치를 시켜 총으로 쏴 죽였다고. 그리고 인민유격대가 살해한 제주도 양민들은 국방경비대가 인민유격대 토벌 작전 중에 사살한 것으로 위장 선전하였다고 그랬잖았어?”
“내가 알기로는 인민유격대가 살해한 숫자보다 토벌대가 사살한 숫자가 훨씬 더 많네.” 석홍이 맞받아쳤다.
“자네도 좌파 정부의 진상조사위와 똑같은 소리를 하는군! 이 사람아, 국방경비대가 반란 세력을 토벌한 것과 무장 반란 세력이 자기들에게 비협조적인 양민을 살해한 것을 같이 놓고 보자는 건가?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당시 제주 도민의 80%가 좌경화된 형편에다 남로당 가입자만 6만이라 했네. 그리고 반란군이 친척이고 친구이고 마을의 이웃이라면 그 동조자가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건 상식이 아닌가? 물론 토벌대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양민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당시 극도의 혼란 속에서 반란군의 동조자와 진정한 양민을 쉽게 구별할 수 있었겠나? 당시에 그것이 가능했겠나 그 말일세!”
태선은 비록 기력이 쇠한 목소리였으나 피를 토하듯 말을 토해냈다.
“그래서? 뜸 들이지 말고 본론을 얘기해!” 석홍이 태선의 말을 잘랐다.
“우리, 죽기 전에 그 일들 증언하세! 기자회견 열어서 사실대로 얘기하자구! 그래서 최소한 역사가 거꾸로 기록되는 건 막자구! 그렇게 하는 것만이 자네가 속죄하는 유일한 길이야!”
“난 그런 걸 들은 기억이 없네. 그리고 그거 나에게 할 소린가? 하고 싶다면 자네나 하게!”
“난 그때 받아 적은 노트를 지금까지 보관했었어. 지금 내 앞에 있어. 이 속에는 구체적인 지역과 살해한 대상까지도 적혀 있지. 무슨 면 선거관리위원장과 그 가족, 어느 마을 이장의 일족, 어느 경찰지서의 경찰과 그 가족들, 그리고 그들에게 비협조적인 반동 부락민들, 이런 식으로 말이야. 이걸 증거물로 제출하자구. 나 혼자는 효력이 없어. 외려 역공격당하기 십상이지. 자네가 함께 있어야 폭발력이 생겨!”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그런 얘기라면 전화 끊겠네. 잘 있게!”
“아, 잠깐! 끊지 마, 얘기가 남았어!”
태선은 급히 그를 붙잡았다.
“정 싫다면 어쩔 수 없네만, 자네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태선은 잠시 가쁜 숨을 고르듯 말에 틈을 두었다가 물었다.
“지금까지 자네가 북한의 하수인이 되어 대한민국에서 한 일들, 그것들 막상 죽음을 눈앞에 두고 어떤가, 여전히 소중한가?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거네.”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 아무튼 자네는 오래 살게.”
“자넨 평생을 잘못된 이념에 속아 죄 많은 인생으로 살다 마쳐도 그 인생이 억울하지 않은가? 자네의 허무한 삶에 일말의 연민도 없는가 그 말일세! 이건 생명에 대한 모독이네. 자네가 참으로 불쌍해!”
“그만하지!”
석홍의 목소리에 진한 노기가 실렸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보태지 않은 채 태선에게 작별을 고했다.
“잘 있게. 젊은 시절 잠깐 자네와 함께했던 추억은 소중히 간직하고 가겠네!”
태선이 석홍의 작별 인사에 대답했다.
“그런가. 나 또한 오십 년 동안 인간 이석홍을 잊은 적은 없었네. 잘 가게. 그리고, 이 사람 석홍, 자네만 간다고 서운해 하지는 마시게. 사실은 나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이번 겨울을 잘 넘기고 봄을 한 번 더 볼는지도 모르겠어.”
“왜, 자네도 어디가 안 좋은가? 목소리가 많이 다르긴 해. 그러게, 쓸데없이 단식을···”
“쓸데없다고? ···그만 두세! 아무튼 난 삶에 미련이 없다네. 여태까지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았어! 어쨌든 자네 잘 가게나. 혹 다음 생이 있다면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았으면 해, 명심하라구!”
“그래, 알았네. 자네도 잘 가게!”
두 사람은 그렇게 이승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길 교수의 장례는 서울 북쪽 외곽의 공원묘지에 수목장으로 치러졌다. 커널 문과 배흥수는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와 무교동의 단골 식당에서 마주 앉았다. 저녁해가 뉘엿한 늦은 오후였다.
둘은 막걸릿잔을 들어 반쯤 마신 뒤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장례식장에서보다 지금 마음이 더 심란합니다. 기분이 아주 엿같아요.”
배흥수가 눈은 울고, 입꼬리는 웃으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 말에 전념이라도 된 듯 커널 문의 눈도 어느새 그렁그렁했다.
“그러게 말이오. 세상이 왜 이럴까? 정 사범이라도 살아서 함께 있다면 가슴속이 이토록 휑하진 않을 텐데, 젠장!”
배흥수가 다시 술잔을 들며 말했다.
“처음 얘기는 아니지만, 근자에 일어난 사건들 말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희한하지 않아요? 한평생을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시고 이 민족이 살아갈 기틀을 마련해 주신 위대한 선각자를 무슨 불륜을 저질렀네, 가정 파괴범이네···, 그분이 자기들 수준의 인간인 줄 알고, 온갖 거짓으로 영상을 만들어 퍼뜨렸던 그 작자,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는데, 얼마 전에 허리가 결딴났죠. 거기다 경상도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자기네들이 원하는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으려 했다는 이유로 교장을 죽이겠다며 윽박질렀던 교사 셋도 일거에 허리가 부러졌잖아요? 두 사건이 모두 역사교육에 관한 문제이거나 개인의 현대사를 바라보는 역사 인식과 관련이 깊다는 점도 특이하고 말이죠.” 마치 처음 얘기하는 사람처럼 흥수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그자들에게 분노한 누군가의 행위로 짐작되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적인 징벌에 박수 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커널 문이 넌지시 흥수를 건너다보았다.
“그래도 저는 알 수 없는 그 누군가로 인해 술맛이 나는 걸 숨기지는 못하겠는걸요. 저는, 솔직히 속이 다 후련합니다. 아무리 지옥 같은 세상이라도 어딘가에는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다고 일깨워 주는 것 같거든요.”
해 지기 전 늦은 오후, ‘낮술 환영’ 선술집에서 진국 후배와 만났다. 2016년 유월에 청계광장에서 25년 만에 우연히 그를 만난 뒤로 가끔 함께 들리던 집이다.
그래, 자넨 어떻게 지내고 있나. 나는 별 표정이 없는 그를 향해 물었다.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그는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도반과 그의 혈육으로 인해, 자네가 겪는 고초가 참 마음 아프네. 사 년 전에 바로 이 자리에서 자네가 그랬지. 딸이 어미 팔자를 닮는다는 말은 들어 봤지만, 아들이 아비 팔자를 닮는다는 말은 없지 않으냐고··· 그 말이 두렵다고··· 이젠 내가, 그 속담에도 없는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네.
선배님, 그 말은 없는 게 맞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래 자넨 마음 단속을 잘하는구먼. 난 자네가 울면 함께 부둥켜안고 울 작정이었네만, 자네가 의연해서 다행이야.
그와 나는 별말 없이, 각기 제 시름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새로이 할 말도 많지 않았거니와,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아는 마음이기도 했다. 그래도 각일병은 해야겠죠. 그의 말에 고무되어 각일병을 비웠다. 서운했던지, 그가 음수보다는 양수가 좋겠다며 한 병을 더 시켰으나 다 비우지 못한 채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선술집을 나왔을 때는 어느새 어두웠다. 나는 어둠 속으로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배웅하며 잠시 섰다가 돌아섰다.
왠지 사람 북적이는 곳이 싫어서 청계천 산책길로 내려가, 시간 반은 족히 걸리는 길을 걸어서 집으로 간다. 이 봄도 속절없이 가나보다. 가로등 불빛 속으로 벚꽃잎이 훌훌 흘러내린다. 나는 공연히 서러운 마음에 나의 ‘십팔번’을 흥얼거려본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내일은 토요일, 많은 사람이 광장으로 모여들 것이다. 어느새 햇수로 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변함없는 사람들. 일부 젊은이들을 제외하면 대개 우리 현대사의 풍상을 몸소 겪은 6070 늙은이들. 서로 이름도 모르지만 그냥 쳐다보기만 해도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는 사람들. 멀리 사는 친척보다 더 정겹고 소중해진 이들이, 토요일이면 광장으로 모여든다.
광장의 열기는 언젠가는 식을 것이다. 그러나 타올랐던 불꽃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속에 가라앉아도 땅속에 파묻혀도 그 불씨만은 꺼질 줄 모르고 우리 국민의 혼백 속에 영원한 희망의 불씨로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활활 타오를 것이다.
얼마 전 어느 고등학교에서, 교장을 죽이겠다며 윽박질렀던 교사 몇이 ‘어떤 사람’의 손에 크게 다쳤다. 거짓 영상을 만들어 민족의 은인을 모욕했던 자도 일을 당했다.
그 어떤 사람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무뢰한들이 수년 전에 죽은 사람의 묘를 파헤치려는 걸 때마침 발견하여 파묘를 면했다고 한다. 파묘에 실패한 그자들은 사망선고를 내린 의사를 찾아가 캐묻고, 고인의 주소지 관할 동사무소에서 사망 기록을 확인했다. 그이의 제자들도 괴롭힘을 당했지만, 워낙 알리바이가 확실해서 큰 탈 없이 넘겼다고 진국이 전해주었다.
어느덧 사 년 전 일이 되었다. 청계광장에서 우연히 진국을 만났던 이튿날 아침에, 나는 그와 함께 서울 남부구치소에 동행했었다. 그 후 우리는 가끔 그날의 선술집에서 술잔을 주고받으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그 얘기들에 의지하여 나는 인사동에 거처를 둔 한 청년의 과거와 현재진행을 쉬엄쉬엄 글로 적었다. 뒤돌아보면 무던히도 아픈 세월이지만, 어느새 여러 해가 훌쩍 지났다. 그리고 이제, 그 주인공이 유령이 되어 사라지고 없는 마당에, 나는 부득이 내 얘기에 마침표를 찍는다.
(2020년 봄 청계천 변에서 해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