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쳐다보니 눈이 내린다. 어두운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선뜻 눈에 띄는 눈이라면 제법 눈다운 눈이 내리는 거다. 문득 마음이 설렌다. 올겨울 첫눈이 언제였든가 생각해 본다. 순전히 나의 기준이기는 하지만 기억에 남는 첫눈이 되려면 내가 직접 맞아서 목덜미가 선득선득할 만큼은 눈송이가 굵어야 하는데 그런 기억이 없다.
조용히 흘러내리는 눈발 사이로 꿈길처럼 먼 옛 곳이 보인다.
어린 시절 시골집 안마당에 눈이 소복이 쌓이면 누가 밟기 전에 뛰어나가 숫눈 위에 첫 발자국을 남기며 풀쩍풀쩍 뛰어다니곤 했었다. 그런 아들을 부엌에서 어머니가 웃으며 바라보셨다. 새벽에 가장 먼저 일어나 밖을 나가시는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안마당의 눈을 곱게 남겨놓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낙동강 언덕배기와 강둑길에 눈이 쌓이면 눈 위에 기러기나 고니 같은 철새들이 발자국을 남겼다. 그 강둑은 그대로지만 이제 ‘나의 살던 고향’은 공단으로 변하여 사라지고 없다.
창문 난간에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으려다 마음이 바뀌었는지 도로 날아간다. 반갑다.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는 말, 피천득 선생의 글에서 읽었다. 그렇다. 오늘 나의 아침은 눈이 내려서, 새가 날아와서, 아름답다.
소설 연재를 마치고 당분간 짧은 글을 올리며 휴식기를 가져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