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야, 너는 오래오래 살아라.

by 해암

오늘 청계천에 잉어가 다시 나왔다. 아직은 거동이 조용하다. 겨울 동안 저들은 어디에 숨어있었을까? 수초 속이나 큰 돌 사이에 웅크리고 지내다가 날이 풀려 다시 나온 걸까?

사람들이 봄의 전령이 매화라 말할 때, 나는 ‘잉어’를 주장한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다. 그러므로 나에게 봄의 시작은 오늘이다.


잉어를 볼 때면 나는 내 친구 자헌이 그립다. 그와 나는 청계9가의 아래위에서 보통 걸음으로 15분 거리에 살았다. 우리는 매주 1회 만났다. 만나는 장소는 한 번은 내 집 근처 한 번은 제집 근처였고, 술값 계산도 그렇게 따라갔다. 그는 술을 즐겼고, 술 한잔 들어가면 웬만한 일쯤은 ‘까이꺼~’ 할 줄도 아는 사람이어서 그와의 술자리는 즐거웠다. 나는 그에게 ‘자헌’이란 호를 지어주었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다양했지만, 그중에서도 재밌고 박진감 넘치는 주제는 단연 뒷담화였다. 뒷담화는 대개 몇 잔의 술이 오갔을 때 나왔다. 뒷담화의 대상은 때로는 공인이기도 하고 때로는 사인이기도 했다. 어떤 대상이든 나오기만 하면 우리는 가차 없이 씹었다. 그러다가 이내 반성문을 쓰기도 했다. ‘야, 이거 너무 나가는 거 아닌가? 앞에서 못 할 말은 뒤에서도 하지 말랬는데.’ 그러다가, ‘뭐 이보다 맛있는 안주가 어딨어?’라며 껄껄거리곤 했다.


그해 봄에 나는 몇몇 지인과 함께 발칸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에 그가 카톡을 보냈다. ‘전화 가능해?’ 귀국하여 전화하겠다고 답한 뒤 내가 아드리아해에서 영혼을 적시는 동안 그는 폐 속에 고인 물을 4리터나 빼고 있었다. 소세포 폐암 말기였다.

‘설마 최악의 사태가 나에게 닥치겠나?’

귀국하여 내가 병실을 찾았을 때 그가 한 첫말이었다. 그는 죽음이란 단어를 피했다. 그는 간절히 살고 싶었다.

그에게는 몇 달 전에 손자가 태어났다. 아들 녀석이 손자를 목만 남기고 물에 담가 씻기는 바람에 그 어린 것의 얼굴이 발갛게 되었다고, 내 앞에서 불쑥불쑥 화를 내던 그였다. 재혼한 아내와 금실도 좋았다. 자타공인 중늙은이의 반열임에도, ‘화목하라.’하신 성경 말씀을 꼭 화·목요일은 아니더라도 실천에 옮기려 무진 애를 쓰던 그였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그 여름이 그가 누릴 마지막 여름이란 걸 직감한 나는 별일이 없는 한 매일 그의 병실로 출근했다. 나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 맞서야 했고, 그와의 우정에 마지막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쫓겼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와 자주 얼굴을 마주하여 잠시라도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것뿐이었다. ‘아주버님이 오시면 저 양반이 웃어요.’ 그의 아내는 나를 아주버님이라 불렀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무너지는 말이 있다. 어느 날 그가 ‘수면제를 먹어도 금방 잠에서 깬다.’고 했다. 왜냐고 묻는 나에게 그의 대답은 ‘불안해서’였다. 그는 잠든 후 다시 깨어나지 못 할까 봐 불안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이승의 끝을 짐작하는 그로서, 잠자는 시간마저 아까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생과 사의 의미를 온몸으로 해석하고 있었을 터였다.

그가 죽기 며칠 전 내가 손을 잡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깨물고 온몸에 힘을 주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침내 둘은 손을 맞잡고 꺽꺽 울었다.

그날 저녁 병원에서 그를 중환자실로 옮길 때, 그는 내가 왜 중환자실로 가느냐며 한참을 버티다가 결국은 의사의 지시를 따랐다고 한다. 그 순간이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는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절대고독과 맞닥뜨리고 몸부림쳤을 것이다. 그리고 이틀 후 새벽에 그는 떠났다.

그가 떠난 날 내 일기장에는 딱 두 문장이 기록되어 있다.

‘새벽에 자헌이 세상을 떴다.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제 반쪽을 잘라 먹고 누웠던 시간에 그는 이승을 하직했다.’ 다른 날보다 서너 배나 큰 글씨로 그 두 마디만 써놓았다. 무척 화가 난듯하다.

그와 나는 가끔 청계천 다리 위에서 잉어에게 먹이를 던져주며 놀았다. 그가 죽은 후 언젠가 내가 쓴 서툰 시 하나를 붙여본다.




잉어


청계천 무학교 다리 밑에는

팔뚝 같은 잉어가 산다


잉어는 날래고 힘차다

잉어가 펄쩍 물장구를 치면

왜가리도 눈치를 본다

잉어는 청계천의 대장이다


잉어는 찬 바람 불면 숨었다가

날 풀리면 다시 나온다

작년에 본 녀석을 난 알 것 같은데

저들도 나를 알까


잉어야, 찔레꽃 피던 봄날

무학교 난간에서 네게 먹이를 던져주던

내 친구는 먼 길 떠나고 없단다


그래, 잉어야

날래고 힘찬 청계천 왕초야

너는 오래오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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