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천 미물들의 생(生)과 사(死)

by 해암

성북천은 북한산 골짜기에서 시작한 작은 실개천이 조금씩 세를 불리며 흘러오다가 청계천을 만나 그 이름을 마친다. 시골처럼 조용한 개천 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길에는 성능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설비해 두어서 걷는 내내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음악은 대개 감미롭고 깊은 정서를 담은 피아노 독주곡이거나 현악기 위주의 실내악으로 졸졸거리는 개울물 소리와 잘 어울린다.


나는 이 산책길을 자주 걷는다. 오랫동안 이 길을 걷다 보니 눈에 익은 사람도 여럿 생겼다. 언제나 손을 꼭 잡고 걷는 60대 부부는 조금은 꼴사납지만 부럽기도 하다. 기관차처럼 헉헉거리며 뛰는 키 큰 젊은이와 마주칠 때는, 퇴근 후 PC 앞에만 뻗치고 있는 둘째를 소환하고 기분이 조금 언짢아 지기도 한다. 키가 작고 다리가 많이 휜 할머니, 온몸의 윤곽이 드러나 보이는 레깅스 아가씨, 늘 천진한 미소를 띠며 걷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은 매번 보는 얼굴들이다.


성북천에는 계절 따라 아름다운 야생 꽃이 지천으로 핀다. 그중에서도, 나는 개망초꽃이 유별나게 좋다. 개망초는 명색이 국화과에 속하지만, 같은 과의 쑥부쟁이나 구절초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어서 그냥 잡초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이 잡초꽃이 군락을 이루어 피면 얘기가 달라진다. 달빛 아래 질펀히 핀 개망초꽃을 바라보거나, 최소한 가로등 아래서만 보아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고, 마냥 므흣하여 숨이 막힐 지경이 된다.


성북천에는 새들도 많이 산다. 쇠백로와 왜가리가 살고, 오리는 여러 종류가 더 많이 산다. 이들은 성북천에 사는 송사리를 잡아먹는다. 백로나 왜가리가 송사리를 부리로 찍어 올릴 때는 세리머니가 멋지다. 은색으로 빛나는 송사리를 가로로 물고 긴 목을 한껏 휘두르거나 날개를 퍼덕이며 승리를 만끽한다. 나는 걷다가 그런 장면을 목격할 때면 ‘헤이! 한 건 하셨구만!’ 하고 마음으로 축하를 보낸다. 물론 송사리를 생각하면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오리는 언제 어디서 알을 품는지 모르지만, 햇볕 따뜻한 어느 날 뜬금없이 앙증맞은 병아리들을 꽁무니에 달고 헤엄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지난해도 몇몇 짝꿍이 새끼를 쳤는데, 그중에서 새끼 열 마리를 달고 다니는 짝꿍에게 나는 정을 주고 말았다. 그러고는 머지않아 후회했다. 정이란 역시 쉽게 주는 것이 아니었다. 정이란 주는 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게 마련이어서 나는 정 준 대가를 마음의 고통으로 치러야 했다.

내 마음의 고통은 오리 새끼의 숫자가 하나둘씩 줄어드는 데서 시작되었다. 새끼 열 마리는 여름을 넘기면서 하나씩 줄어들더니, 개울물에 단풍잎이 떠내려올 즈음에는 세 마리만 남았다. 일곱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는 늘 산책길을 걸으며 오리 새끼의 숫자를 확인하였고,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어느 날은 안도하고, 어느 날은 낙심하며 보냈다.

나는 산책길에 가끔 만나는 길고양이를 범인으로 점찍었다. 범행 현장을 목격하거나 증거를 확보한 건 아니지만 나의 심증은 굳어갔다. 범행은 분명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한밤부터 새벽 사이에 이루어졌으리라. 범행 현장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나는 길고양이를 볼 때마다 ‘저놈 쉐끼!’ 저놈이 그 여리고 예쁜 것을.’ 하며 몸서리치게 녀석을 증오했다.


시간은 내 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흘러서 이제 성북천 산책길에도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찾아왔다. 그사이 살아남은 오리 새끼 셋은 어미와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훌쩍 컸다.


다시 봄을 맞아 오리 병아리를 볼 때가 되고서야 나는 비로소 그동안 내 마음에 조금씩 움터 왔던 또 다른 마음과 타협하기로 작정한다. ‘백로와 왜가리와 오리와 길고양이의 배고픔이 다르지 않고, 희생당한 송사리와 오리 새끼의 생명의 무게가 다르지 않다.’는 평범하고 당연한 진리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모두가 그저 살아있는 자연의 모습일 뿐인데, 내 마음이 예쁜 놈, 덜 예쁜 놈을 분별하여 어느 한 편으로 기울었을 뿐이었다.


그래 아무렴! 청둥오리 짝꿍이 남은 새끼들과 이 겨울을 잘 낫듯이 길고양이도 혹독했던 지난 겨울에 무탈했기를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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