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후문으로 통하는 언덕배기 샛길을 지날 때면 언제나 한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해 질 무렵이면 늘 같은 벤치에 앉아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있다. 노인 곁에는 때 묻은 지팡이가 걸쳐져 있고, 그 옆의 조그마한 기계에서는 흘러간 옛노래가 나지막이 흘러나온다.
봄부터 겨울이 되기까지 달라진 것이라곤 강아지의 위치가 노인의 무릎에서 패딩 속으로 옮겨간 것뿐이다. 저녁 공기가 서늘해지자 강아지는 노인의 검정 패딩 속에서 머리만 빼꼼히 내놓고 있다.
나는 노인이 일어나 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 귀로는 노래를 듣고 눈으로는 강아지를 바라볼 뿐이다. 그에게도 한때 화양연화의 시절이 있었을 테고, 바람 불고 서리 내리는 삶의 고빗길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깊은 속사정이야 어쨌든, 노인은 자신의 건강을 잘 돌보며 살아온 사람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나는 그 노인이 불편했다. 그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은 늘 하나였다. ‘나는 벤치에 혼자 앉아 저러지는 말아야지.’ 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에도 나는 애써 시선을 피했다.
노인의 벤치가 가까워지면 괜히 마음을 졸였다. 벤치에 노인이 보이지 않았으면 싶었고, 그의 앞을 지날 때는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조금 덜 씩씩하게 걸었다.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성북천을 걸으며 엉뚱하게도 그 노인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궁리하고 있었다. 노인장? 뭔가 어색했다. 어르신? 선생님? 왠지 목뒤가 간지럽다. 그렇다고 아저씨? 노형? 모두 아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호칭할 이유가 없는 사람을 호칭하려니 그런 거라는 걸.
비가 내린 뒤 쌀쌀해진 초겨울 어느 날, 그가 보이지 않았다. 날이 추워 못 나오나 보다 하는 생각과 함께 ‘잘 됐다.’ 하는 마음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도 노인이 보이지 않자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거야. 혹시 화장실에서 넘어져 고관절이나 허리를 다치셨나? 아니면 아침에 그냥 못 일어난 걸까?’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는 사이 나는 어느새 노인을 다시는 소생할 수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노인에게는 할멈이 있을까? 아들 녀석은 평소엔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유산이나 챙기려고 나타났을까? 혹 오갈 데 없어 딸네 집에 얹혀살다 그렇게 된 걸까? 그렇다면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그따위 지질한 상상에서 겨우 벗어날 즈음, 노인이 다시 그 자리에 있었다. 안 보이기 시작한 뒤 대략 열흘쯤 지난 때였다. 성북천을 걷고 돌아오는 길에, 막 켜진 가로등 아래서 그가 강아지의 목을 쓰다듬으며 앉아 있었다. 지팡이와 낡은 라디오도 그대로였다.
“영감님, 어떻게 된 거예요?”
아, 내가 왜 그랬을까. 말을 내뱉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어쩌자고 나는 그런 이상한 짓을 저지른 걸까. 한 번도 떠올린 적 없는 ‘영감님’이라는 호칭은 또 어디서 툭 튀어나온 걸까.
“네, 저기… 무슨 말씀인지….” 노인도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 순간 나는 서둘러 일을 수습할 말을 찾아야 했다.
“아, 한동안 안 보이시길래 걱정이 돼서요. 죄송합니다.”
나는 머리를 두어 번 주억거렸다.
‘죄송할 일을 왜 한 거야, 이 멍청아.’ 자책하며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몇 걸음 옮겼을 때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좀 아팠거든요.”
가로등 그늘에 얼굴을 가린 노인의 목소리는 선했다. 이어서 다시 그 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나는 뒤돌아 고개만 한 번 주억거렸다.
서툴렀다. 말을 붙일 때도, 말을 끝낼 때도 한없이 서툴렀다. 나는 몹시 부끄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노인이 건강하기를 빌었다. 그렇게라도 하면 부끄러움이 조금은 상쇄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진심으로 빌었다.
그 후 어느덧 계절이 또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지난 늦가을 어느 날부터 노인은 다시 보이지 않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은 지금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