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캄캄한 아파트 거실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이상함을 넘어 조금은 괴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한 남자가 거의 매일 밤 그러고 있다. 다름 아닌 내 얘기다.
아파트 아래는 4차선 찻길이 지나가고, 찻길 주변은 오래된 집들과 작고 허름한 식당과 공구상, 옛날식 이발관 등이 있다. 그사이에 제법 깨끗해 보이는 집은 편의점이나 빵 가게다. 조금 멀리 보아도 높아 봐야 3층 정도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야말로 빈티를 물씬 풍기는 동네다.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꼭 거실 등을 끄고 베란다 창문을 통해 늦은 밤의 행인을 기다린다. 때로는 사람이 보일 때까지 기다리느라 꽤 인내심을 갖고 버티기도 하고, 깜박 잊고 침대에 누웠다가도 얼른 일어나 기어이 한 사람의 행인이라도 본 후에야 다시 잠자리에 든다.
처음에는, ‘저 사람들은 무슨 일로 이처럼 늦은 시간에 어디론가 바삐 가는 걸까’ 하는 마음으로 내려다보았는데, 볼수록 그들의 속 사정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간혹 걸음걸이가 비틀거리는 취객도 눈에 띄었지만, 대개는 생활 전선에서 열심히 뛰다가 일을 마무리하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을 향해 종종걸음을 치는 사람으로 보였다. 드물게는 늦은 밤에 일터를 향해 가는지 도심 방향으로 바삐 걸어가는 사람도 있고, 이따금 개의 목줄을 잡고 걷는 사람도 보인다. 어쩌다 넋 놓고 내려다보노라면 새벽 1시가 지난 시간에도 행인은 있다. 당장은 보이지 않다가도 인내심을 발휘하여 기다리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코로나 팬데믹 때도 행인이 아주 끊인 적은 없었다.
이토록 늦은 밤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사람이나 그 시간에 일터를 향해 가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일에 종사하는 걸까? 때로는 너무 궁금한 나머지 뛰어 내려가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었다. 23층이 아니라 저층에 살았다면 그런 엉뚱한 일을 벌였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심야 행인 관찰 버릇이 굳어지는 동안, 신기하게도 나의 마음속에는 그들에 대해 묘한 친밀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늦은 밤까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가족 사랑과 책임감과 그들이 느낄 뿌듯함이나 애환까지도 공감하고 연민하게 되었다. 또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는 사람과는 그의 남모를 사연을 함께 나누고도 싶었고, 늦은 시간에 개 산책을 잊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의 바쁜 일상을 위로하는 말 한마디를 건네고도 싶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만약 그들에게,
‘고생이 많으시군요.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겁니다. 화이팅!’
‘힘드셨나요? 한잔하셨군요. 다 지나가게 마련입니다. 까이꺼하며 잊어버리세요!’
‘늦은 밤에 개 산책을 시키시는군요. 바쁘게 사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힘내세요!’
이따위 오지랖 넓은 말을 건넨다면, 그들은 뭐라고 할까? ‘그런 거 아니에요.’ 하며 손사래를 치거나, ‘왜 이러시죠?’ 하며 정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중 한 사람이라도 ‘네, 감사합니다.’ 한다면···,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촉촉해진다면···,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도 싶다.
나는 오늘도 늦은 밤에 창문 밖을 내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마음으로 ‘엄지척!’을 해 보인다.
나의 이 이상한 버릇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아마 당분간은 이 버릇을 못 버릴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것이 좋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