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은 안다

by 해암


일기장은 안다




작년,
청계천에 벚꽃이 핀 날은

3월 30일


아파트 울타리에 장미를 본 날은

5월 1일


선풍기를 처음 켠 날은

6월 5일


재작년에는
언제 벚꽃이 피고
언제 장미가 피었던가


나에게 물어봐라
나는 다 안다


일기장이
가만히 귀띔해 준다


몇 해 전
누님을 강변에 묻던 날
첫눈이 내렸다


그날이 언제이던가

일기장을 펴보면 안다


올겨울 첫눈은
어디서 맞을까


첫눈은
삼각지도 아니고
왕십리도 아닌


내 머리 위에
눈이 펄펄 흩날린
그곳이다.


아들놈 취직된 날
늦은 밤
혼자 울고 웃었다


친구에게 바둑을 지고
늦은 밤
유튜브와 씨름했다


약재상에서
약 고르는 아낙네가 고와서
두 번 세 번 돌아보았다


아비 노릇에 숨이 차서
어느덧 옛적이 된 내 아버지를 그리며
새벽잠을 뒤채였다


일기장은 다 안다


그러나
묻지 마라


나는 모른다.


일기를 한 30년 썼다. 이젠 왜 쓰는지는 모른다. 일기를 쓰는 그 시간이 소중하고 좋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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