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형과 회피형의 연애 시작
PT로 체중 감량에 성공한 뒤, 서울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2월 중순쯤 자취방을 계약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마침 친한 친구도 서울에서 살 예정이라고 해서 대학가 원룸에서 함께 자취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부모님을 떠나 혼자 사는 거라 모든 게 새롭고 즐거웠다.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각종 술자리가 이어졌다.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자리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그러다 보니 체중이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PT로 다져둔 근육 덕분인지 살이 급격히 찌진 않았다. 무엇보다 동기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워서 체중 증가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학교가 익숙해지고 봄이 끝나갈 즈음 첫 연애를 시작했다. 과대표였던 그는 누구든 잘 챙기고 리드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갔고, 결국 연인이 되었다. 동기들과 함께 있을 땐 유쾌하고 다정한 그였지만, 둘이 있을 땐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웠다. 열 번 중 아홉 번은 차갑다가 한 번 잘해주면, 나는 그 한 번의 따뜻함에 매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나쁜 남자'의 표본 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해서 사귀었다 보니 그도 날 좋아한다는 확신을 얻길 원했다. 그러나 자기는 표현 잘 못한다며 절대 좋아한다, 사랑한다 말하는 법이 없었다. 당연히 예쁘다, 귀엽다는 말은 꿈도 못 꿨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가 상처받을 말도 서슴지 않고 했다. 돼지라고 부르는 건 기본이고 살 좀 빼라는 말도 자주 했다. 함께 있을 때 TV에서 여자 아이돌이 나오면 보란 듯이 그들에겐 예쁘단 소리를 몇 번이고 하면서 TV만 쳐다봤다.
당시에 내가 뚱뚱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키 170에 몸무게는 50후반대로 지극히 평범한 체형이었다. 그런데 그는 키 183에 몸무게가 50초반이었다. 항상 그의 옆에 서 있으면 내가 뚱뚱하게 느껴졌다. 그가 너무 말랐던 거지만, 그때는 그런 판단을 할 여유가 없었다. '팔도 다리도 내가 더 두껍고, 몸무게도 내가 더 많이 나가니까... 내가 옆에 있으면 창피한 걸까?' 라며 나를 탓하기 바빴다.
그와 만날 때마다, 그가 좋아하는 연예인처럼 마르고 예뻐지면 나를 더 좋아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돼지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데이트를 할 때면 음식이 더 먹고 싶어도 남겼다. 데이트할 때뿐만 아니라 동기들과 함께 먹을 때에도 살이 찔까 봐 항상 음식을 남겼다. 그렇게 밖에서 참다가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놓여서 식욕이 올라왔다.
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 보니 시간이 맞으면 함께 저녁이나 야식을 먹었다. 분식류나 순대볶음 같은 자극적인 음식을 잔뜩 사와서 먹었다. 하루 종일 참았던 식욕이 터져 평소보다 더 많이 먹게 되었다. 먹을 때만큼은 행복했지만 다 먹고 나서는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먹은 게 다 살로 가면 어쩌지? 살이 찌면 남자친구가 싫어할 텐데...'라는 생각에 초조해졌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다가 다 토하면 살로 가지 않을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해 다시 토하는 걸 시도하기로 했다.
원룸이라 방음이 잘 안 되었기에, 친구에겐 씻으러 들어간다고 하며 욕실로 들어갔다. 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물을 틀어놓은 뒤 변기 앞에 쭈그려 앉았다. 칫솔로 혀 끝을 마구 긁었더니 구역감이 올라왔고, 몇 번의 시도 끝에 토를 하게 되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보다, '됐다!!'라는 해방감이 먼저 들었다. 몸은 기진맥진해졌지만, 위가 비어 있다는 감각을 느끼니 일말의 죄책감도 사라졌다.
한 번 토하는 게 어려웠지, 그 뒤로는 점점 토하는 게 쉬워졌다. 평소에 망설이느라 잘 먹지 못한 것들을 저녁 시간에 먹었다. 토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양껏 먹었다. 내가 평소와 달리 잘 먹으니 '요새 왜 이렇게 잘 먹어?'라며 친구가 의아해했지만, 그냥 식욕이 올라와서 그렇다며 얼버무렸다. 위가 아플 때까지 왕창 먹고 물을 잔뜩 마시고 화장실에 가서 다 토해냈다. 맛있는 걸 마음껏 씹어 삼키면서 살도 찌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그저 행복했다. 그렇게 폭식증이라는 늪으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