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생활을 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무렵, 아버지는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곁을 지키는 걸 힘들어하니 아버지가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후회와 죄책감에 괴로워했던 것과 별개로, 병원에 묶여 있던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숨통이 트이기도 했다. 병원생활에서 벗어나니 폭식 횟수는 조금 줄었지만 대신 운동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었다.
토익 학원을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하면서, 근처에 있는 폴댄스 학원에도 등록해 주 3회 운동을 다녔다. 폴댄스를 꾸준히 하면서 웬만한 거리는 모두 걸어 다녔다. 하루 만 보는 꼭 채워야 안심이 되고, 그래야 기분이 좋았다. 운동에 집착할수록 음식은 더 적게 먹었다.
낮 시간에는 주로 쥬씨라는 생과일주스 가게에서 시럽을 뺀 바나나 주스를 사 마시거나, 스타벅스에서 우유를 두유로 바꾼 두유라떼를 마셨다.(스타벅스 두유라떼는 단맛이 없어 안심하고 먹었다.) 공복 시간이 길어져 배가 고파도, 그 시간에 살이 빠진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배고픈 상태에서 쾌감을 느꼈다.
아직 큰아버지 집에 살고 있었기에, 저녁 시간에는 제대로 된 밥을 먹었다. 낮에 부족하게 먹다 보니 저녁에 맛있는 음식을 입에 대면 멈추기가 어려웠다. 자제하지 못하고 한꺼번에 많이 먹었다는 걸 뒤늦게 자각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부르다 못해 아플 때까지 물과 음식물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친척들의 눈을 피해 모두 토해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안방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했고 나는 현관 쪽 화장실을 썼다. 집이 넓어 화장실과 거실 사이 거리가 꽤 되었기 때문에, 내가 화장실에서 뭘 하든 거실까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런 환경 덕분에 자제할 생각도 없이 폭식과 구토를 반복했다.
아침에 옷을 갈아입을 때면 전신거울 앞에서 복근의 선명도와 다리 굵기를 체크했다. 마르고 근육 있는 배를 볼 때마다 만족감이 들었지만 굵은 다리를 볼 때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충분히 정상 범주에 있는 몸이고, 다들 말랐다고 했지만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해 몸을 더 혹사시켰다.
복학할 시기가 되어 친척 집을 나와 학교와 가까운 동네의 리빙텔로 거처를 옮겼다. 말이 리빙텔이지 고시원과 별다를 게 없는 곳이었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침대와 책상, 작은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친척과 함께 살다가 다시 혼자 살게 되니 집에 있으면 허전하고 외로웠다. 감정의 공허함은 곧 폭식으로 이어졌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편의점에 들러 폭식할 거리를 사 오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이렇게 한창 폭식증에 시달리던 중, 거식증과 폭식증 등 식이장애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그걸 보고 나서야 내가 제거형 폭식증을 겪고 있음을 알았다. 단순히 나쁜 습관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의지로 고치기 어려운 '병'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그즈음 몸이 안 좋아졌다는 걸 느끼고 있었기에, 폭식증을 영원히 고치지 못할까 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중고등학생 때도 나지 않았던 좁쌀여드름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음식을 소량만 섭취해도 몸에서 거부하는 건지 더부룩하고 불편하기만 했다.
문제를 인지한 뒤, 본가에 내려갈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에게 병간호가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 폭식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도 넌지시 털어놓았다. 비정상적인 식습관이라는 걸 알았기에 많은 고민 끝에 털어놓았지만,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내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건 의지 문제가 아닌 것 같고, 고치기가 정말 어렵다고 말해도 엄마는 연예인처럼 방울토마토만 먹으면 살이 빠질 거라며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 털어놓았는데 이해받기는커녕 상처로 되돌아오니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후 다시 복학해 학교생활을 시작했고 운동 강박과 제거형 폭식증의 조합으로 살은 찌지 않았지만, 몸과 마음은 점점 병들어갔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집에 와서는 우울해하며 폭식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3학년 2학기를 다니던 중, 신청했던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이 일은 폭식증을 고치는 첫걸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