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와 연애를 병행하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연락을 받았다. 따로 살고 있던 친아버지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여윈 얼굴로 어딘가에 누워 애써 웃고 있는 셀카 한 장과 함께 지금 응급실에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잠시 뒤엔 큰고모에게서 전화가 왔고,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이며 손쓸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에 기댈 수 있는 건 남자친구였기 때문에, 울면서 그에게 전화를 했고 그는 당황하며 내게 달려와주었다.
어떻게 하냐며 우는 나를 달래주고 안쓰러워하던 그의 모습에 잠시 안심했다. 기댈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울음이 조금 잦아들자, 그는 스킨십을 시도했고 내 자취방으로 가자며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고, 안심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자취방을 정리하고, 경기도에 있는 큰아버지 댁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어떤 병원에서도 수술이나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기에 아버지는 큰아버지 집에서 지내며 산책을 하고 건강식을 챙겨 먹는 식으로 자가치료를 시도했다. 물론 상태 확인을 위해 병원을 정기적으로 오가기도 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곁에서 수족처럼 챙겨줄 사람이 필요했고 장녀인 내가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아버지 곁을 하루 종일 지키며 필요한 것을 챙기고 불편한 점을 해결하는, 간병인의 삶이 시작되었다.
혼자 지내는 게 아니니까 폭식증이 잠잠해질 거라 예상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폭식하고 싶은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매 끼니를 너무 잘 챙겨 먹으니 불안감이 더 커졌다. 가족들 앞에서는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몰래 화장실에 가 토하는 일이 잦았다. 아버지를 돌보느라 활동량도 극도로 줄었는데 그 상태에서 식사까지 제대로 하면 살이 찔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아버지의 상태는 호전되는 듯하더니 급격히 악화되어 결국 병원으로 옮겨졌다. 1개월밖에 못 살 거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지 3개월이 넘은 시점이었다. 병원에서는 마약성 진통제를 통해 통증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아버지는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즈음 남자친구에게 실망하게 될 사건이 또 생겼고, 더는 연애를 이어갈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아 결국 이별을 택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연애를 지속하며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했던 그의 모습은 내 믿음이 만들어낸 환상이었고. 울면서 그에게 기대던 날 마주한 실망스러운 모습이야말로 그의 진짜 얼굴이었다는 것을.
이별의 허무함을 곱씹을 틈은 없었다. 아버지가 병원으로 옮겨간 뒤에도 병간호는 여전히 내 몫이었기 때문이다. 회복할 거라는 믿음으로 호스피스 병동이 아닌 일반 병동에 입원해 있었기에, 늘 곁에 보호자가 필요했다. 아버지는 간병인을 두는 것을 불편해했고, 나 역시 딸로서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곁을 지켰다. 병원 간이침대에서의 생활은 정말 힘들었다.
아버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봐야 했다. 진통제 투약이 끝나고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온몸을 마사지하며 조금이라도 투약 간격을 늦추기 위해 애써야 했다. 진통제 투약 시간은 들쑥날쑥했고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아버지가 부르면 간호사를 찾아 병실을 나서야 했다. 병간호를 시작한 뒤로는 늘 긴장된 상태로 잠들었고 푹 잘 수 있는 날은 없었다. 자상하고 온화하던 아버지의 말투가 짜증 섞인 말로 바뀌어 내 마음을 할퀼 때도, 뒤돌아 몰래 울었다.
매일 좁은 병실 안에서 아픈 아버지를 지키며 지내다 보니 내가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족들 앞에선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었기에 먹고 토하는 것으로 감정을 배출했다. 큰아버지가 사다 준 김밥을 먹거나 병실에 쌓여 있는 간식을 집어 먹는 정도라 폭식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지만, 불안하거나 마음이 불편한 날이면 그마저도 토해버렸다. 움직임이 적으니 적게 먹어도 살이 찔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맛있는 걸 먹어도 토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들었고, 토할 수 없는 환경이면 금세 불안해졌다. 토할 생각으로 왕창 먹었는데 토하지 못하면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병실 안 화장실을 쓸 수 없는 날엔 공용 화장실에서 몰래 토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아픈 상황에서도 살찌기 싫다는 집착에 사로잡혀 병원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볼 때면, 스스로가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