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칠 생각도 못 하고 지지부진 끌어오던 폭식증을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교환학생에 선정되고 나서였다. 다른 나라에 가서도 폭식증에 끌려다니며 먹고 토하느라 시간을 날리면, 나중에 너무 후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거형 폭식증을 고치는 방법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일단 '토하는 행위부터 막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폭식하게 되고, 몸에 안 좋은 것들을 잔뜩 먹어댔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반복해온 습관이라 한 번에 고치는 건 당연히 어려웠다. 뭔가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머릿속엔 비상등이 켜져 '토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폭식증을 고친다고 다이어트 식단을 하면 얼마 못 가 폭식하게 된다는 걸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터라, 샐러드나 배가 안 차는 양의 음식을 먹을 생각은 버렸다. 그렇지만 살찌는 음식에 대한 불안이 심했기 때문에, 너무 자극적이거나 맛있는 음식도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먹어도 건강에 크게 나쁘지 않고, 포만감이 있으며, 맛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음식을 고민하다 보니 고구마가 적합했다. 고구마 한 봉지를 사서, 리빙텔 공용 주방의 전자레인지로 5~6개를 찐 뒤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배가 부를 때까지 먹었다. 고구마도 살찐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먹으면서도 불안하고 당장 토해버리고 싶었지만, 외식이나 편의점 음식보다는 나을 거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먹고 바로 자는 게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토하지 않기 위해 억지로 잠들려고 애쓰기도 했다. 자고 일어나면 어느 정도 소화가 되어 있었기에, 죄책감은 들었지만 ‘토해야겠다’는 충동은 조금 줄었다.
처음엔 눈을 감으면서도 '이렇게 먹고 자면 살이 더 찌는 거 아닐까?' 싶어 불안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토하지 않는 연습'을 반복했다. 매일같이 체중계에 올라가 확인해 보니 먹고 토하지 않아도 생각보다 살이 찌지 않았고, 조금씩 안심이 되었다. 불안감이 줄어든 어느 날, 외식에도 도전해보기로 했다.
외식을 하면 음식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먹을 땐 더 먹고 싶어도 일부러 남겼다. 그러고 허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폭식을 반복하곤 했다. 그래서 폭식증을 고치기 위해 혼자 외식하며 음식을 다 먹는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엔 얼마나 먹어야 포만감이 오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오랫동안 폭식하고 토하는 식습관에 익숙해진 탓이었다. 그래서 비빔밥 같은 걸 시켜도 나물이나 야채만 다 건져 먹고 밥은 남겼는데, 그 버릇을 고치기로 결심한 날은 밥까지 남김없이 싹싹 긁어 먹었다.
'음식을 남기고 나서 허전해서 폭식할 바에야, 먹고 싶다는 욕구에 충실하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도전한 것이었는데, 정말 배부르게 먹으니 폭식 충동도 줄었다. 물론 몇 년 동안 반복된 습관 탓에 더부룩하고 소화도 잘 안 됐지만, 욕구를 충족시킨 후의 만족감은 분명했다. '나는 밥 반 공기만 먹어도 배부른 사람이야'라고 여겼던 강박과도 같은 생각이 조금씩 깨져갔다. 먹고 나면 체중이 늘어나 불안하기도 했지만, 활동량이 많았기 때문에 곧 제자리로 돌아왔다. 체중이 늘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수록 먹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고, 폭식과 구토는 점차 줄었다.
방학이 되어 본가에 내려가면서도 폭식과 구토는 많이 줄었다. 교환학생 준비로 바쁘기도 했고, 부모님과 함께 있으니 규칙적인 식사가 가능했던 것도 컸다. 그렇게 폭식증이 어느 정도 나아졌다는 뿌듯함을 안고 일본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