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올리고 떠올려봐도 어찌 아픈 기억뿐이다.
"자, 이거 한 번씩 칠 때마다 색칠하고 10번 칠 때까지 나오지 마."
그 좁은 공간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지옥', 아니 '생지옥'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미취학 아동인 나에게 뛰어노는 게 소중하고 귀했던 나에게 피아노가 한대 있는 좁은 연습실은 그야말로 무서운 공간이었다. 아, 한글도 중요하고 친구들과의 딱지치기도 중요하고 '486 컴퓨터'로 하는 도트로 이루어진 게임도 중요한데 피아노 학원이 웬 말이냐고요...
당시의 나는 경주에서 나를 비롯한 모든 가족이 함께 살았다. 아침을 차리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희생하는 외할머니가 계셨고 눈뜨면 모든 가족들이 식사를 했는데 사실 온 가족의 아침식사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 내가 다녔던 '청아 미술학원', 미술학원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지금으로 치면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 같은 곳이었다. 거기서의 오전 업무(?)를 마치면 피아노 학원을 가야 하는데 대한민국의 보통의 아이라면
"피아노를 왜 배우고 싶니?"
"그냥 엄마가 가래서요."
의 형식적인 멘트는 통하지 않았다. 당시 난 6살의 활동적인 어린이 었고 매일매일 에너지가 넘쳐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넘치는 6살의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족들은 위기를 느꼈는지 미술 학원 스케줄도 모자라서 피아노 학원까지 늘려버렸다.
당시 피아노 학원의 원장님을 아주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나의 어머니와 비슷한 능력치를 가진 나의 이모였다. 정말 우리 집안은 '음악인 집안'인지 '교육자 집안'인지 헷갈릴 때가 많지만 그 유전적인 요인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정작 내가 두 가지 길중 한 길도 걷지 않는 것은 오롯이 공부를 안 했던 나의 탓이리라)
아주 '처음에만' 흥미로웠다. 누르면 소리가 나는 아름다운 소리, 수많은 건반들 심지어 6살의 어린이를 가히 압도할 수 있는 '그랜드 피아노'도 있었기에 흥미 유발에는 아주 으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알아야 할 것들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부터 처음의 느낌은 점점 시들시들 해지기 시작했다.
"자, 이거 한 번씩 칠 때마다 색칠하고 10번 칠 때까지 나오지 마."
의자에 앉아 손가락을 올려야 할 이유를 못 느낀 6살의 나는, 피아노 앞에서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크게.
다음 편에 계속...
좋은음악수집가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피아노와 함께한 시기를 이야기로 풀어내어 매거진 형식으로 발행합니다. 매거진 한편에 '피아노'가 들어간 음악, 좋은음악수집가가 사랑하는 1곡을 추천해드립니다.
'피아노'하면 가장 대표적인 대중음악 중 한곡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이곡부터 소개한다. 비틀스의 음악이 나의 인생의 전환점의 시작이라면 존 레논이 발표한 솔로 음악은 나의 인생의 방향을 어떤 식으로 잡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구체화를 시켜주었다. (그래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동그란 금테 안경을 쓰는 이유기도 하다.)
비틀스가 해체하고 1970년 존 레논과 그의 아내 오노 요코는 1970년, <John Lennon/Plastic Ono Band>를 발표한다.(오노 요코 명의로 된 <Yoko Ono/Plastic Ono Band>가 같은 날 나왔지만 크게 신경 쓰지 말자.) 이 음반이 존 레논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은 음반으로 유명하다면 Imagine은 '반전과 평화'를 주제로 한 음반으로 유명하다. (물론 애증의 관계인 폴 매카트니를 겨냥한 디스곡 <How do you sleep?>도 이 음반에 담겨있다.)
전 세계인을 상대로 '존 레논'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곡이기도 할 것이며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송을 꼽으라고 한다면 10위권에 항상 랭크되는 그야말로 존 레논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다. 많은 방송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무드를 만들어 낼 때 이 곡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존 레논이 추구하는 사상에 가장 근접한 곡이 아닐까? 곡이 사람을 따라가든 사람이 곡이 따라가든 어찌 되었든 존 레논의 명곡임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