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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음악수집가 Mar 12. 2022

안녕? 열아홉의 첫 CD!  그리고 '음악여행 라라라'

반쪽짜리 뮤지션이 아닌 반의 반의 반쪽짜리 음악인의 삶의 이야기

"엄마.. 그... 제가 좋아하는 밴드가 조금 있으면 공연을 하는데요....."

"예매해라"

"진짜요?"

"왜? 가기 싫냐?"

"아뇨! 예매할게요!"


역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시원시원한 우리 엄마.

2009년, 특히나 무더위를 자랑했던 경산에서 고3의 나는 학교 화장실에서 몰래 전화를 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에서 이야기해도 될 정도였는데 얼마나 가고 싶었으면... 어쩌면 대학교 입시보다 더욱 간절했나 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김창완밴드 그리고 크라잉넛.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지금은 세 팀이 모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2009년에는 가능했다. 같은 날 한자리에 이 세 팀이 모였으니 누가 안 가겠는가!

(당시 나의 꾐으로 동행 한 나의 친구 영빈이도 이 날을 정말 잊지 못할 거다.)




요새도 고등학교에는 '야간 자율학습'이 있나? 야간 자율학습! 그것을 하는 시간이 오면 그 많은 학생들이 독서실 같은 곳에 틀어박혀 누구는 정말 부족한 과목을 교과서나 문제집 그리고 참고서 등을 활용하여 진정으로 탐독하며 좋은 대학을 위해 노력하는가 하면 세상모르게 졸음과의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지만 높은 확률로 선생님의 매질로 깨어남)하는 녀석들도 있고 준비해 온 mp3 플레이어나 PMP(스마트폰이 생기기 이전에 활용했던 동영상 플레이어), 전자사전에 담아온 음악을 듣는 학생도 있었다.


'자율'은 국어사전에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는 일. 또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여 절제하는 일.이라고 적혀있는데 그때는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야간 자율학습이냐 야간 타율학습이냐"라는 식의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뭐, 선생님만 안 들으시면 되는 것이니까! 그래도 까만 어둠 속을 헤치고 삼삼오오 모여 돌아가는 하굣길은 나름의 낭만이 있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휴대폰을 사용하다가 적발되면 '1번 적발은 한 달 후, 2번 적발은 1년 후, 3번 적발은 졸업식날'이라는 다소 무시무시한 압수 기간이 있었는데 나는 용케도 위기가 두어 번 있었지만 운이 좋게도 걸리지 않고 mp3파일을 꾹꾹 눌러 담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잘 활용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서는 전자사전이라는 당시 최고의 아이템을 이모에게 지원받고난 후 자연스레 음악을 옮겨 담아 들었다.


고등학생 때는 정말 나의 감성을 채워줄 음악이 필요하여 매일매일 갈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것을 채우기에는 주말에 하는 음악방송은 한계가 있었다. 특히나 그때는 아이돌 가수들은 쳐다보지도 않을 시절이었기에 좋은음악을 더욱 갈망하였는데 나의 욕구를 MBC는 알고 있었는지 인디밴드와 음악성이 꽉 찬 가수들을 섭외하여 스튜디오 라이브 형식으로 방송해 준 '음악여행 라라라'라는 프로그램을 일주일에 한 번 늦은 시간에 방송해주었다. 금요일 저녁,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와서 교복을 아무렇게나 벗어두고 TV가 없는 방에 홀로 앉아 DMB(휴대폰으로 보는 TV, 요즘 청소년들은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로 궁상맞게 봤는데 그때 마침 나온 팀이, 산울림을 해체하고 김창완 아저씨가 훌륭한 연주인들을 모은 밴드! 그리고 한번 본적이 있어서 더욱 반가웠던 '김창완밴드'가 나왔다.


2009년 9월에 김창완밴드 정규 1집 <BUS>가 발매되고 음반 홍보차 음악여행 라라라에 출연하여  그 음반의 첫곡 '내가 갖고 싶은 건'을 부르며 방송이 시작되었다. 아날로그 빈티지 록 사운드를 장착한 그들은 청아한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의 클린톤과 피아노의 도입부, 노래를 시작할 때 어렵지 않은 코드 진행과 '사랑'을 주제로 한 동요 같은 가사에 금방 매료되었다.


내가 갖고 싶은 건 멋진 자동차가 아니죠  

물론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내가 갖고 싶은 건 멋진 옷이 아니랍니다.  

물론 입고 거릴 거닌다면 좋겠죠.

말하기가 쑥스럽지만 내가 갖고 싶은 건 그대의 따뜻한 사랑


아... 이 가사에 매료된 나는 딱 한 가지만 떠올렸다.

'CD를 사자. 사서 다 들어보자. 다 들어봐야 진가를 알지..'

서른이 넘은 시점에서도 참 기특한 생각이다. 역시 음반은 사서 들어야 한다!




내 첫 CD, 나의 첫 음반의 구입에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단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용돈'이 너무 부족했다.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님 용돈을 요구하지 않았기에.. 근데 정말 필요한 게 참고서, 문제집이면 모르겠는데 '음반'은 이야기가 아주 달랐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문제집을 주문할 때 끼워주문 하는 것!

그때 마침 필요한 것도 있었기에 몰래 한 작전은 안 걸리면 된다는 마인드는 이 글을 보고 계신 어머니도 이해해 주시리라.. (무려 2009년의 일이다.) 맹세코 이 일을 끝으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았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괜한 겁을 먹었을지 모르지만 만약 솔직하게 "음반 하나도 같이 주문해도 돼요?"라고 했어도 어머니는 허락하셨을 것 같다. 큰 죄를 짓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 뒤로 김창완밴드의 1집의 CD를 리핑하여 내 휴대폰과 전자사전에 차곡차곡 넣어놨다. 매일 하는 정주행이 전혀 지겹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꿈이 생겼다.


'언젠가 꼭! 제대로 밴드를 할 거야!'


산울림에서 이어지는 역동적인 에너지.. 그리고 담백한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를 꼭 쓰고 싶었고 서른이 넘어도 나는 현재 진행 중이다. 역시.. 꿈을 꾸게 해 준 인생 밴드 김창완밴드의 1집을 정주행을 또 해본다.

여전히 먼 길을 빙빙 돌아가는 느낌이지만 꿈이 있다는 것만큼 삶의 희망은 없는 것 같다.


김창완밴드 1집 <BUS> /나도 언젠가 승합차나 버스를 운전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을, 좋은 사람들만 태울 수 있게..

김창완밴드 1집은 데뷔작 <The Happiest>에 비해 조금 더 대중적이며 한 번에 모든 것을 녹음하는 One-take 녹음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a.k.a 양평이형)의 싸이키델릭 한 기타 연주는 듣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나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듯한 노랫말은 10년이 넘게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시대를 관통하면서 한편으로는 편안한 곳으로 인도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산울림이 추억 속 한 페이지를 장식해 나갔다면 김창완밴드는 여전히 진행형이니 더욱 좋은 음악을 들려주리라 믿는다.


내게도 희망은 있는 걸까 내일은 내게도 기회를 줄까 이 세상이...

도시에는 바람이 분다 외로움이 바람이 되어 그리움도 사치스러운... <Good Morning (part.1)>


나는 바쁘다네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항상 항상 항상 세차게 달리네  <길>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지내던 그 시절 좋았지 <그땐 좋았지>

이담에 돈 많이 아주 많이 벌어 이담에 아이들 아주 많이 낳아 행복할 거야 <결혼하자>


마무리하며.. 이 음반에서 좋아하는 노랫말을 뽑아보았다. 아무래도 김창완 아저씨의 글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탁월한 능력이 있으신 것 같다. 수많은 노랫말들은 어쩌면 글을 쓰는 나에게 주어진 선물 혹은 숙제가 아닐까 한다.




좋은음악수집가의 어쩌면 뜬금없지만 '그 시절' <음악여행 라라라>를 거쳤던 많은 아티스트 들 중 최고의 아티스트의 라이브! 지금 생각해보면 '음악여행 라라라'라는 프로그램이 있었기에 많은 아티스트들을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튜브 링크를 제목에 첨부하였으며 음반이 있는 것은 음반사진도 첨부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창완밴드는 위에 언급하였기에 제외했습니다.)


붕가붕가레코드 공장제대형음반 No.8 밴드 Achime의 정규 1집. 음반의 아트웍이 예술이다.

Achime - 맞은편 미래

권선욱, 김수열, 이상규, 김정민, 김경주로 이루어진 5인조 밴드 Achime의 정규 1집 <Hunch>의 1번 트랙. 이 당시의 멤버는 이상규의 군입대로 인하여 김동현이 자리를 대신하였고 김경주는 합류 전이다. Achime의 신호탄은 꽤나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며 실제로도 정규 1집은 팬들의 마음을 제대로 채워준 음반이었다. 지금은 예전처럼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것 같지 않아서 마음 한 곳에 아쉬움이 가득할 뿐이다.


검정치마의 <201>음반. 좌측이 초판이고 우측이 스페셜 에디션으로 재발매가 된 버전이다.

검정치마 - 좋아해줘

보통의 사랑노래 가사라면 "사랑해요", "내 마음을 받아줘요"가 어울리겠지만 첫 가사부터 "날 좋아해 줘 아무런 조건 없이"는 정말 신선했다. 직설적인 가사와 점진적으로 직진하는 멜로디 라인도 아주 괜찮다. 이 음악이 수록된 <201>은 2018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73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검정치마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으며 발표할 때마다 많은 리스너들의 호평을 받는 훌륭한 아티스트니 그들의 시작점을 이 영상으로 시작해도 무방할 것이다.


김범수, 케이윌 -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괴물 보컬'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실제로 김범수케이윌을 두고 '괴물'이라고 지칭했는데 그냥 내가 보기엔 두 사람 모두 엄청난 보컬리스트라는 것을 대중들은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흔히 4대 보컬 '김나박이'에서 '김'은 김범수를 지칭하니 이것으로 끝.)

별 다른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최고!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미니 2집. 히든 트랙으로 삽입이 되어있으니 참고하자!

브라운 아이드 걸스 - My Style

2009년, 고3의 마음을 제대로 뒤흔들어 놓았던 실력파 보컬그룹 브라운 아이드 걸스는 미료(랩), 나르샤(보컬), 제아(보컬), 가인(보컬)으로 이루어진 팀이다. 물론 우리 세대에서는 댄스그룹으로 알고 있지만 정말 네 명 모두가 멋진 음색과 가창력을 갖추고 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원곡이 댄스 음악이라면 음악여행 라라라를 통해 보여준 것은 잔잔한 편곡이었다. 히든 트랙으로 나온 원곡도 피지컬 음반을 사야 들을 수 있었으나 나중에 디지털 싱글로 나올 정도로 꽤나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찾아 듣는 새로운 편곡으로 그때의 그 감성으로 돌아가 보자.


<Hello>는 이 음반의 2번 트랙이다!

세렝게티 & 요조 - Hello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을 볼 때 참 간사하다. '겨울이 오면 여름이 그립고, 여름이 오면 겨울이 그립다.' 막상 그 계절이 오면 싫어할 거면서.. 이 곡을 들으면 빨리 여름이 와도 괜찮을 것 같다는 간사한 생각에 빠져든다.

세렝게티와 요조의 합작은 컴필레이션 음반 <남과 여... 그리고 이야기>에 수록되어 있고 이 음반의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남성 아티스트와 여성 아티스트의 합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 곡을 듣는다면? 더워도 추워도 오히려 좋지 않을까?


어쩌면 자켓을 통해 초라한 자신을 먼저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까?

이장혁 - 스무살

스무 살에 이 곡을 들었을 때는 이 곡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내 스무 살도 딱히 유쾌하진 않았던 거 같다. 돌이켜 보면 스무 살의 나는 유쾌한 척을 했을 뿐. 사실 지금에 와서야 유쾌함과 유쾌한 척을 적절히 섞어 사는 것 같음을 느낀다.

계속 듣노라면 '아마도.. 지금 스무 살들도 이 곡을 이해하기 어려울 거야?'라는 약간 위험한 혼잣말을 하게 된다.


박기영, 웨일 - 거리에서

윤종신 작사, 곡이며 성시경이 발표한 곡을 박기영웨일이 음악여행 라라라에서 불렀다. DMB를 통해 보게 되었을 때의 그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저 유튜브로 남겨놓은 MBC에게 감사할 뿐.

시원시원한 가창력에 숨겨져 있는 감성을 한번 잘 찾아들어보면 어느새 푹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작은 새>는 이 음반의 12번 트랙이다!

마이 앤트 메리 & 소이(라즈베리 필드) - 작은 새 

역시나 <남과 여... 그리고 이야기>에 수록되어 있는 또 다른 명곡. 이 음반을 사게 된 것도 음악여행 라라라의 영향이 매우 크다. 그저 연기자로 알고 있었던 소이는 이 영상을 통해 가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걸그룹 티티마 출신이라는 것은 한참 후에 알았다.) 소이도 소이지만 마이 앤트 메리의 보컬 정순용의 목소리가 참으로 매력적이다.


브로콜리 너마저 1집. 지금은 상당히 구하기 어려워졌다.

브로콜리 너마저 - 보편적인 노래

다시 보니 또 새롭다. 다시 보니 앳되다. 덕원(베이스, 보컬), 류지(드럼), 잔디(키보드), 향기(기타 / 탈퇴) 그리고 계피(보컬 / 탈퇴)로 이루어졌던 그때의 브로콜리 너마저는 지금보다 많이 어렸던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던 성가(聖歌)와 같은 존재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때의 그 혼란스러웠던 나의 감정을 제대로 달래준 명곡들을 그들은 많이 들려줬다. 적어도 나의 대학교 시절은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좋은 사람보다 좋은 음악이 넘쳤던 시절이어서 음악으로 위로받았던 나날들'로 말이다. 뭐.. 지금도 그런 것 같지만.


서울전자음악단의 1집, 왜 두장이냐 하면 왼쪽은 2004년에, 오른쪽은 2005년에 나왔다. 두 음반 모두 타이틀 곡 <꿈에 들어와>를 들을 수 있다. 사실상 같으면서 다른 음반.

서울전자음악단 - 꿈에 들어와

아마 서울전자음악단은 나의 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밴드가 아닐까? 그만큼 애정 하는 밴드고 사실 이 영상을 통해 이 팀을 알게 되었으니 정말 오래되긴 했다. 물론 시간이 조금 지나고 해체 소식을 알렸을 땐 가슴이 철렁거렸지만 재결성 후 지금도 활동 중이다. 단정하게 입고 다정하리 만큼 아름다운 이들의 선율을 오롯이 느껴보자. 디지몬 시리즈의 처음과 끝이라고 할 수 있는 <Butter-Fly>를 부른 키보디스트 전영호의 키보드 세션은 이 영상의 덤.




좋은음악수집가가 여러분들께 질문합니다!

여러분들의 첫 CD를 기억하시나요? 선물을 받았다거나 오랜 시간 기다려서 산 중고 CD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가장 아끼는 CD도 좋습니다.

어떤 CD에 손이 많이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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