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책상 앞에 앉아 문제집을 들여다보다가도
문득 마음이 흐트러지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었다.
학교 뒤편, 낮은 산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
그 길은 특별할 것도 없었지만
나에게는 생각을 내려놓는 작은 탈출구였다.
바람은 늘 비슷하게 불었고
나무들은 그저 서 있었지만
그 속을 걷고 나면 이상하게도
머릿속이 조금 맑아지곤 했다.
시간이 흘러 스무 살, 서른 살이 되고
직장이라는 틀 속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었을 때도
나는 여전히 길을 찾았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혼자가 되고 싶을 때면
말없이 길을 걸었다.
나에게 걷는다는 것은
조용히 나 자신에게 돌아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정년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한 시대를 내려놓고
나는 다시 길 위에 서 있다.
예전과 다른 것은
발걸음이 조금 느려졌다는 것뿐,
길은 여전히 나를 받아주고
나는 여전히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이제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걷는 동안
내가 살아왔던 시간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며
천천히 이해해가는 중이다.
인생이란 어쩌면
어딘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걸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걷다 보면
놓쳤던 것들이 보이고
잊고 있던 마음들이 떠오르고
가끔은
아직도 내가 모르는 나를 만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는다.
끝이 어디인지 몰라도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Life may not be about arriving somewhere,
but about walking on until the very end.
So today, I walk again.
Not knowing where the end lies,
just one step, and ano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