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늦가을, 석양이 내려앉던 산길은 수많은 계절을 견뎌온 흔적처럼 깊게 패여 있었다. 잘게 부서진 돌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어 발을 디딜 때마다 자잘한 소리가 났고, 마른 낙엽들은 바스러진 종이처럼 겹겹이 쌓여 발밑에서 조용히 부서졌다. 길가에는 오랜 비바람에 깎여 생긴 균열과 거친 결을 그대로 드러낸 큰바위가 병풍처럼 서 있었고, 그 틈 사이로 마른 풀들이 뿌리를 내린 채 저녁바람에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굵은 소나무 줄기는 검푸른 껍질이 갈라져 있었고, 그 틈마다 지나간 세월이 켜켜이 스며 있는 듯했다. 마른 잎이 힘없이 매달려 있다가 바람이 스치면 천천히 떨어져 길 위에 내려 앉았다. 그 사이사이로 이름 모를 잡목과 덤불이 바람이 불때마다 서로 부딪혀 사르르 낮은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해는 아직 능선 위에 걸려 있었지만, 골짜기부터 먼저 어둠이 스며들어 나무와 바위의 윤곽을 부드럽게 흐리고 있었다. 길은 점점 희미해졌고, 우리들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나 서로 겹쳐졌다. 그 그림자들은 마치 하루의 무게를 대신 짊어진 또 하나의 우리처럼, 말없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앞장선 삼촌과 형은 가끔 뒤를 돌아보면서, “조금만 더 가면 돼”하고 있고, 나는 그 한마디에 다시 어깨를 으쓱이며 대나무를 끌어 당겼다.
함양 외할머니 댁에는 대나무가 무성했다. 우리는 그 대나무를 꺾어 거창 송변마을까지, 네 시간 넘는 산길을 걸어 옮기곤 했다. 왜 그토록 대나무를 가져왔는지, 어디에 쓰였는지는 이제 기억에도 희미하다. 다만, 석양 속에서 길게 드리워지던 그림자와, 어깨를 짓누르던 그 무게, 그리고 “조금만 더 가면 된다”던 목소리만이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The sun was still caught on the ridge, yet darkness had already begun to rise from the valley, softly blurring the outlines of trees and rocks. The path grew faint, and our shadows stretched long, overlapping one another. Those shadows, like another version of ourselves bearing the weight of the day, followed silently behind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