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설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서리 Jan 06. 2023

무던한 사람#4

그 사람은 작은 회사에 입사를 했다. 맡은 업무는 컴퓨터를 조금만 다룰 줄 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일이었다. 그래서 입사도, 일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어려웠다. 이 사람에게 타인은 안 그래도 어찌해야 할지 모를 존재였다. 거기에다가 함께 일하고 소통하며 관계를 원만하게 이루어야만 하는 대상이라니, 정말로 어려웠다. 소통과 교류의 경험이 극도로 적은 이 사람은 잘 몰랐지만 사실 이 회사의 사람들은 실로 누구라도 학을 뗄 만큼 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이 사람은 회사에 다녔다. 직장이라는 것이 있어야 했고 수입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수입의 일부는 부모님께도 보내 드려야 했다. 그래서 그냥 다녔다.


회사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 사람은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으나 자신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눈치가 없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퇴사를 했다. 다른 직장 동료들과 교류가 거의 없었던 이 사람은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다만 왜 자신이 나가야 할 사람으로 몰리게 되었는지는 약간 알 것 같았다. 자신이 나간다고 해서 이 회사에 별다른 변화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나가 달라고 통보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었으나 이 사람은 어찌할 방도를 몰랐다. 회사의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이 나가면 될 일이라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과 불행은 이어졌으나 이 사람은 별다른 동요도 없이 무던해 보일 뿐이었다.


어느 날 죽음이 찾아와 물었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그 사람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죽음은 그 사람의 삶을 훑어보며 다시 물었다. 

“이유도 모른 채로 살아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사람은 침묵했다.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 약간 당황스러워 보일 뿐이었다. 다시 한번 죽음이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와 가겠는가?”

그 사람이 답했다. 

“지금이 그럴 때라면.”

죽음은 재미있다는 듯 빙긋 웃으며 답했다. 

“영 재미가 없군.”

그러고 죽음은 떠났다. 그 사람은 병원에서 눈을 떴다. 신기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 만에 정신을 차렸다고 했다. 어찌 된 일인지 경위를 들어보니 트럭에 치였다고 했다.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이 사람에게 돌진한 트럭 운전사는 취한 채였다고 한다. 이 사람은 옳지 못한 경우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합의에 동의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너무나 미안해하면서 굽신거리는 상황이 못내 뻘쭘해 그저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고가 나고 정신이 든 후 꼬박 하루가 지나고 도착한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운전사 측과 합의금에 대해 한 번 더 논의한 후 일은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합의금 일부는 수술비를 내는 데 쓰였고, 그 나머지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런 것에 관여하기에는 너무 피곤했고 그저 자꾸만 가빠오는 호흡을 가다듬는데 온 신경을 쏟을 뿐이었다.


사고가 난 후유증으로 팔을 오래 들고 있기가 힘들어졌다. 이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해보았다. 재활 훈련을 꼬박꼬박 가서 최선을 다해 치료를 받은 것이다. 그림을 제외하고는 어디에 돈을 쓸지 몰랐던 이 사람이 돈을 모아두기만 해서 치료를 꾸준히 받을 수 있었다. 그림이 예전만도 못하게 그려지는 것이 당황스러웠던 이 사람은 발전하지는 못할망정 퇴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치료를 열심히 받았지만, 일정 시간 이상 팔을 사용하면 손이 떨리는 증상이 완전히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림을 오래 그리지도, 그전보다 잘 그리지도 못하게 된 이 사람은 그럼에도 그림을 계속 그렸다. 어쨌건 그림 그리는 것은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면 전보다 더욱 빨리 지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계속 그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 사람은 불행한 줄을 몰랐다. 말 그대로,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던한 사람#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