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통의 끝을 넘어 감응하는 ‘지극한 사랑‘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문학동네, 2021)

by 엄마오리


“역사적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고 시적인 산문”으로 알려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는 <작별하지 않는다>이다. 1950년 5월 광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 <소년이 온다>에 이어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국가적 폭력에 의해 개개인이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압도적 고통과 희생, 사랑을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결연한 문체로 보여준다.


소설가 ’경하‘는 광주에 대한 소설을 발표한 후 일련의 사고로 삶의 의욕을 잃는다. 겨우 몸을 추스려 생활을 이어갈 즈음 제주에 살고 있는 친구 ‘인선’에게 병원으로 와 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인선은 목공 중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해 서울의 병원으로 이송되어 온 상태였다. 고통스러운 치료 가운데 인선은 자신의 새를 돌보기 위해 제주 자신의 집으로 가 달라고 경하에게 부탁하고, 경하는 자신에게 새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제주로 향한다. 폭설로 교통이 끊겨가는 가운데 겨우 인선의 집에 도착한 경하는 고립무원의 그곳에서 인선의 어머니가 겪었던 4.3의 기억을 더듬어간다.


‘1948년 11월 중순부터 석 달 동안 중산간이 불타고 민간인 삼만 명이 살해된’ (p.262) 사건은 인선의 어머니 정심에게도 예외가 되지 않았다. 부모를 모두 잃은 정심과 그의 언니는 잡혀간 오빠를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하지만 경남의 코발트 광산에서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빠는 끝내 유해조차도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한다. 오빠를 찾던 과정에서 만난 정심의 남편 또한 일가족을 잃고 수감되어 십오 년의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두 여자는 책을 쓰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만났던 피해자들을 생각하며 경하의 꿈 속에 등장했던 검은 통나무를 심는 과정을 기록 영화로 만들기로 하지만 성사되지 못한 채 사 년이 흐른다. 작중 화자인 경하는 “껍데기에서 몸을 꺼내 칼날 위를 전진하는 달팽이”(p.12)같이 죽음과 삶의 경계를 헤매고 인선은 봉합수술 이후 괴사를 막기 위해 계속 바늘로 피를 내 고통을 느껴야만 하는 상황이다.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p.57) 새를 구하기 위해 폭설을 뚫고 인선의 집을 찾아 헤매는 경하의 고투는 정심의 오빠를 찾기 위한 싸움과도 겹쳐진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정심의 고통은 인선으로, 또 경하에게까지 이어지며 서로 감응된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한강의 서술은 한 편의 산문시와 같이 펼쳐진다. 경하는 인선의 집에 혼자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죽은 이들이 찾아오고 인선 또한 멀쩡한 손가락으로 경하 곁으로 다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한다.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p.311) 경하는 이 모든 것이 환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의심하지 않고 인선의 이야기를 듣는다. 4.3 사건과 전쟁, 보도연맹 학살사건 등 광기어린 적의에 의한 학살은 인간성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작가 한강은 끝까지 응시하며 정심을 통해 포기하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길을 보여준다. 경하가 환상속의 인선을 통해 듣게 되는 어머니 정심의 길고 지난한 싸움은 결코 작별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노벨상 수상 기념강연에서의 이 말은 인간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연결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 애도를 멈추지 않는 것. 고통에 연결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인간성의 회복이 될 수 있음을 한강은 소설을 통해 전하고 있다. 고통에 예민한 독자들에게는 한강의 작품을 읽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작가가 전하려는 작은 불꽃은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p.325) 도착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통을 끌어안은, 작가의 시원(始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