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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Jun 19. 2020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속에 담겨있는 인간사 세상사

<안나카레니나> 톨스토이(민음사,2009)/조 라이트 감독(2012)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되는 톨스토이의 대표작 <안나 카레니나>(민음사, 2009)는 총 1700여 페이지의 막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장편소설이다. <전쟁과 평화>,<부활>과 함께 톨스토이의 3대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이 소설은 19세기 중반 이후 러시아 귀족계층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펼쳐지는 인간사의 다양한 속성을 파헤친다. 


‘스테판 오블론스키’ 공작은 가정교사와의 불륜을 아내 ‘다리야’에게 발각당하자 위기를 느끼고 동생 ‘안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오빠의 집이 있는 모스크바로 향하던 안나는 ‘브론스카야’ 백작부인과 동석하게 되고 어머니를 마중나온 ‘브론스키’백작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된다. 스티바(오블론스키)의 친구 ‘레빈’은 다리야의 동생인 ‘키티’에게 청혼하지만 브론스키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키티는 그의 청혼을 거절한다. 하지만 브론스키가 안나와의 불륜에 빠지게 되고 키티는 절망한다. 좌절한 레빈은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 농부들과 농사일에 매진한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부적절한 관계가 사교계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자 이를 감지한 남편 ‘카레닌’은 안나에게 경고하지만, 경마대회에 출전한 브론스키가 낙마하는데 충격을 받은 안나가 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부부는 돌아올수 없는 다리를 건넌다.  


1870년대 제정 러시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수많은 등장인물이 엮어내는 각각의 인생사로 가득하다. 거의 실시간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은 위선과 허영, 체면을 중요시하는 러시아 사교계의 실상과 농노제 폐지 이후 나라의 경제를 짊어진 농업의 상황 등을 치밀하게 묘사한다. 종교에 대한 신념,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 또한 톨스토이의 주요한 관심사였다. 그는 레빈이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육체노동에 대한 존엄과 신에 대한 경외를 보여준다. 고백성사에 참여하지 않아 결혼식에 차질을 빚을 정도로 신과 종교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레빈은 키티와의 결혼 후 농민들과의 밀접한 교류를 통해 선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기에 이른다. “나의 이성으로는 내가 왜 기도를 하는지 깨닫지 못할 테고, 그러면서도 난 여전히 기도를 할 거야.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3권 p.560) 레빈의 회심은 톨스토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레빈이 작가의 페르소나라고 여길만한 이유다. 


1부 초반 기차역의 경비원이 사고로 기차에 치어 죽게 되는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톨스토이는 죽음에 대한 화두 또한 놓지 않는다. 레빈의 형 니콜라이가 병으로 죽게 되는 과정을 상세히 담고 있는 5부 20장은 특별히 ‘죽음’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독자는 마치 실시간으로 죽음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보는듯하다. ‘고통은 일정한 속도로 점점 더 커지면서 본연의 일을 수행했고 그로 하여금 죽음을 준비하게 했다. 그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순간은 없었고, 그가 의식불명에 빠지는 순간도 없었으며, 그의 몸뚱이 가운데 아프지 않거나 그를 괴롭히지 않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그 육체에 깃든 기억, 인상, 생각마저 이제는 그에게 육체와 마찬가지로 혐오감을 불러 일으켰다.’(2권 p.559) 죽음에 대한 톨스토이의 강박은 1886년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창비, 2017)으로도 이어진다.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사유를 끊임없이 계속했던 그는 죽음을 통해 삶을 돌아보는 역설의 이야기를 펼친다.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주인공’(나보코프)이라고 평가받는 안나의 존재는 영화와 연극, 뮤지컬로 재생산되게 하는 원동력으로, 캐릭터가 갖는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경우 비비안 리, 소피 마르소 등 시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을 거쳐 2012년에는 키이라 나이틀리가 <안나 카레니나>의 타이틀 롤을 맡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무대연출이다. 감독 조 라이트는 로케이션을 고민하던 중 폐쇄된 극장을 이용해 영화를 촬영하기로 한다. 무대의 막이 오르며 영화가 시작되고 배경은 오블론스키의 집에서 카레닌의 집으로, 기차역으로, 무도회장으로 시공을 넘나들며 바뀐다. 카메라의 이동은 시퀀스의 이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관객은 마치 연극을 보는듯한 느낌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제한된 공간에서 연극무대가 갖게 되는 압축적이고 시적인 표현이 영화의 스크린위에서 매우 영리하게 구현되었다. 배우들의 정확한 동선에 더해 등장인물의 심상까지도 연출한 안나와 브론스키의 무도회장면은 그중에서도 인상적이다.  


소설의 방대함이 영화에 그대로 옮겨가기에는 시간적 물리적인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벽돌에 비견될만한 책의 두께에 부담을 느낀다면 영화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소설가 백영옥은 읽는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감상을 이야기한다. ‘서른일곱에 읽은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사는게 나쁘다’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가’라는 선뜻 대답하기 힘든 질문으로 뒤바뀌어 있었다.’1) 다양한 관점으로 독해가 가능하다는 것이 고전이 갖는 힘 중 하나일 것이다.  



1)네이버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6164&cid=58814&categoryId=58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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