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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May 15. 2020

고립된 세계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소용돌이

<매혹당한 사람들> 토머스컬리넌 (비채,2017)/소피아 코폴라 감독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1966년 작 <매혹당한 사람들>(2017, 비채)은 1971년에 이어 2017년까지 40여년의 간격을 두고 두 번에 걸쳐 영화화된 소설이다. 저자 토마스 컬리넌(1919~1995)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주로 방송, 영화계에서 라디오 광고와 영화, 다큐멘터리 극본, 희곡작품 등을 발표했다. <매혹당한 사람들>은 그의 첫 소설로 고립된 공동체에 들어온 이방인이 그들과 겪게되는 감정적인 파장을 치밀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1971년 돈 시겔 감독에 의해 당시의 스타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흥행에 성공하고, 2017년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리바이벌 작품 또한 그해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원작이 가진 매력이 건재함을 보여준다.   


남북전쟁이 한창인 버지니아 주의 어느 곳. 자연을 사랑하는 여학생 ‘어밀리아’는 숲속에서 부상당한 북부 연방군 상병 ‘존 맥버니’를 발견하고 그를 자신의 거처인 ‘마사 판즈워스 여자 신학교’로 데리고 간다. 교장인 ‘마사’, 마사의 동생이자 교사로 일하는 ‘해리엇’, 판즈워스 집안의 흑인 노예 ‘마틸다’와 5명의 여학생들은 이 뜻밖의 ‘손님’에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섬같은 장소에서 여덟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는 심리적 긴장상태로 빠져들어 간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많지만 이 작품에서는 이야기의 무대를 고립시키는 상황설정에 불과하다. 바깥세계와 단절된 여자들만의 공간에 들어온 한 남자는 ‘통통한 암탉들이 우글거리는 닭장 안의 유일한 수탉’의 지위를 한껏 누린다. 존은 누군가에겐 진정한 친구로, 연인으로, 또는 사라진 남동생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 하면서 여자들에게 접근해간다. 존의 상처가 나아가면서 그가 학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지고 다함께 식사를 하게 될 정도로 좋은 관계에 이르게 된다. ‘무엇보다 그날처럼 우리가 서로에게 따스하고, 친절하고, 다정했던 적은 없었다는 것을 이곳에 있는 모두가 증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은 나(마리 데브르)도 그 한복판에서 상대가 누구건, 그 사람에게 다정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펄쩍펄쩍 뛰었다.’(p.223) 맥버니가 자신과 같이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믿는 어밀리아나 그에게 자신을 데리고 기숙사를 떠나는 연인의 역할을 기대한 에드위나 등 학교의 구성원은 자신의 욕망을 그에게 투사하기 시작하고 맥버니는 누구나에게 다정하게 대하며 그들의 감정을 증폭시킨다.  


소설은 일면식 없는 사람이 오롯이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 된 공동체의 자장 안으로 들어올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주도면밀하게 보여준다. 서사는 각 등장인물들의 시선으로 이루어져 사건에 대한 개인의 생각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가장 어린(10세) ‘마리 데브르’조차 존재감을 과시하며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동일한 비중으로 사건을 서술한다. 외부인인 맥버니는 서사를 만드는 주체 또는 원인제공의 역할을 하지만 그의 시점은 등장하지 않는다. 철저히 내부인의 시선으로만 진행되는 서사는 애증으로 형성된 공동체의 전선을 만들며 진행된다. 누군가를 소유하려는 욕망과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의도는 인간 감정의 격한 파란을 일으키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결국 타인에 대한 권력을 획득하려는 서로의 몸부림인 것이다.  


소설에서 각자의 감정이 세밀하게 보여졌다면, 2017년 소피아 코폴라의 연출로 만들어진 영화는 비주얼에서 느낄수 있는 분위기에 더 무게를 두었다. 손질되지 않은 남부의 정원 사이로 보이는 대저택은 남부 고딕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빛이 별로 없는 실내의 조명은 세심하게 배치돼 인공의 느낌이 거의 들지 않고 인물의 내면에 켜켜이 싸인 감정을 대변하는 듯 한 장치로 사용된다. 햇빛이 비치는 창을 배경으로 선 인물들에게 생기는 림 라이트는 내면에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억제하는 굴레처럼 보이고, 촛불로 밝힌 밤의 실내는 농밀한 감정의 열기를 느끼게 한다. 이미지의 향연은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해주지만, 한 명 한 명의 개성이 살아있던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의 수가 줄고 중심인물 몇 사람에게만 관심이 집중되면서 개연성이 약해지게 된 점이 아쉽다. 영화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렸지만 한계 또한 명확하게 보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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