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오리 Oct 09. 2020

조지 오웰 월드의  출발점

서평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by 조지 오웰 (문학동네, 2010)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1)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은 <동물농장>, <1984년> 등 날카로운 풍자와 사회 비평이 담긴 소설은 물론, 저널리스트로서 집필한 다양한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로 탄광 노동자의 삶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고발하고, 내전에 관한 기사를 쓰기 위해 간 스페인에서 의용군에 참전했던 경험으로 <카탈로니아 찬가>를 집필했다. 확고한 정치적 의식의 소유자인 그는 신념과 삶을 일치시킨 인물이었다.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라는 본명을 가진 조지 오웰은 1903년 영국 하급관리의 아들로 인도에서 태어났다. 우수한 학업성적으로 명문 이튼 칼리지에 입학해 장학금을 받으며 재학하지만, 집안의 넉넉지 못한 경제적 상황으로 학교에서 심한 차별을 받아 힘겨운 학생시절을 보낸다.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인도 제국경찰에 몸담지만 식민지에 만연한 영국 제국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사직하기에 이른다. 이후 파리와 런던을 오가며 빈민의 삶을 체험하는데 이때의 경험을 집필한 것이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문학동네, 2010)이다. 그의 첫 작품인 이 책은 사회의 밑바닥에서 빈곤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분투와 생활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나름 안정적인 직업이었던 식민지의 경찰직을 그만두고 문학수업을 위해 파리로 건너간 작가는 호텔과 음식점의 접시닦이를 하며 파리 뒷골목의 싸구려 여인숙을 전전한다. 자신의 고난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독자의 코앞에 빈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펼쳐낸다. ‘보따리 하나 없이 맨몸으로 나타나 일주일쯤 묵다가 사라지는’ 여인숙의 투숙객들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난해 ‘삶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정상적으로 온건하게 살려는 노력을 포기해버린’ 사람들이다. 길고 긴 배고픔 끝에 호텔과 식당 등의 접시닦이 일자리를 구하지만 열다섯, 심지어는 열일곱 시간이라는 살인적인 노동시간은 ‘머리를 깎는다든가, 신문을 본다든가, 옷을 완전히 벗을 겨를조차 없’게 한다. 이후 런던으로 건너간 조지 오웰은 약속됐던 취업이 틀어지면서 ‘스파이크’라고 불리는 부랑자 구호소를 전전하는 떠돌이 생활을 이어간다. 파리에서의 생활이 빈곤한 괴짜들의 부산함과 쉼 없는 노동의 고단함으로 점철되었다면 런던의 생활은 구호소와 간이숙소, 구빈원을 찾아다니는 방랑의 시간이었다. 전도를 위해 음식을 미끼로 예배를 강요하는 자선단체의 행태와 감옥과 다를 것 없는 구빈원의 묘사는 암울하다. 


건조해 보일 수도 있는 생활의 묘사는 빈곤함을 공유했던 그의 동료들과의 에피소드로 활기를 가진다. 러시아 군인 출신인 보리스와 부랑자 패디, 길거리 화가였던 보조 등, 절망과 기쁨을 함께 했던 주변인물들에 대한 조지 오웰의 시선은 따뜻하다. 굶주림이 계속될 때조차 온기를 나누며 생활을 같이한 그들은 가족이나 다름없다.’ 나는 마리오나 패디나 좀도둑 빌 같은 친구를,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가까운 친구로서 사귀고 싶다. 접시닦이라던가 떠돌이, 강둑 노숙자들의 영혼이 진정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고 싶다.'(p.409) 밖에서의 관찰자가 아니라 안으로 뛰어든 동료로서의 시선은 이후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카탈로니아 찬가>등의 작품까지 일관성 있게 이어진다. 


그는 '빈곤의 외곽 이상을 본 것 같지는 않다'고 했지만 그것은 그가 그 안에서 진정으로 절망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현대사회 노예로서의 '접시닦이'에 대한 그의 고찰은 절대적 빈곤 속에서도 무뎌지지 않은 깨어있는 지성을 보여준다. '게으른 사람은 접시닦이가 될 수 없다. 그들은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드는 판에 박힌 생활에 사로잡혀 있다. 만약 접시닦이도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오래전에 노동조합을 조직해서 처우개선을 위한 파업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한가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p.276) 최소한의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될 수 있고, 더 나은 삶을 위한 개선의 노력도 가능하다. 당장 먹고 사는데 바쁜 사람에게 미래를 위한 투자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떠돌이나 부랑자에 대한 편견은 그들을 '불한당', '끔찍하고 위험천만한 사람','사회적 기생충'으로 여기게 하지만 오웰은 그러한 선입견은 불공평 하다고 주장한다. '이 엄연한 사실을 이해한다면 사람들은 떠돌이의 처지에 자신을 대입해 볼 것이고, 그 생활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유별나게 허무하고, 통렬하게 불쾌한 생활이다.’(p.395) 작가는 막연한 혐오 속에 박제되었던 대상으로서의 빈곤자를 살아 숨 쉬는 이웃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소환한다.  


글을 마치며 오웰은 선언한다. '그러니까 다시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떠돌이는 전부 불한당에다 주정뱅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거지에게 한 푼 주었을 때 고마워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을 것이며, 실직한 사람이 기력이 없어도 아연실색하지 않겠고, 구세군에는 헌금을 하지 않겠으며, 또 내 옷을 전당 잡히지 않을 것이고, 광고 전단을 거절하지 않겠으며, 그럴듯하게 말끔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즐기지도 않을 것이다'(p.409) 유머와 따뜻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객관적이고 비평적인 시선을 고수하는 그의 작품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독자의 곁에서 작가의 목소리를 전한다. 필명 ‘조지 오웰’로 쓴 첫 책이기도 하지만, 그의 날카로운 현실 비평과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하는 작품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조지 오웰을 좀 더 깊게 읽어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1)<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2010,p.294


작가의 이전글 '퀴닝'은 가능한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