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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Oct 17. 2020

고독과 연대, 글쓰기로 이루어진 타피스트리

서평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김현우 옮김 (반비. 2016)

리베카 솔닛(1961~)은 예술비평과 문화비평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로 주목받는 작가이자 역사가이면서 환경, 반핵, 인권운동에 열렬히 동참한 활동가이기도 하다.1)  2000년 <걷기의 인문학>으로 시작된 그의 글쓰기는 <어둠속의 희망>, <길 잃기 안내서>등으로 이어졌다. 2008년 미국의 독립 언론 매체 <톰 디스패치>에 실린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Men Explain Things To Me)’라는 글로 크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맨스플레인 (mansplain : man+explain)’이라는 단어는 2010년 뉴욕타임즈의 ‘올해의 단어’로 뽑히기도 했다.2) <멀고도 가까운>은 그의 내밀한 개인사를 통해 ‘읽기와 쓰기, 고독과 연대’에 대해 이야기한 에세이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로 시작되는 이 책은 마치 씨실과 날실이 엮여 하나의 태피스트리를 이루듯 솔닛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그에 따른 사색의 기록으로 완성되었다. 딸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며 알츠하이머와 싸우는 어머니, 자신의 건강 이상으로 받게 된 치료과정들,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솔닛이 아이슬란드에 머물렀던 경험들이 차곡차곡 포개진다. 아이슬란드 레지던시를 결정하고 얼음으로 가득찬 북구에 대한 상상을 하던 솔닛은 <프랑켄슈타인>의 한 장면을 끌어내고, 쉽지 않은 삶을 살았던 작가 메리 셸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연결시켜 표현한다.  


작가의 삶에 대한 서술이 많지만, 다양한 단상과 사색을 담고 있다는 면에서 자서전보다 에세이에 가깝다. 고향집에서 실려 온 100파운드의 살구는 이 책에서 중요한 시각적 이미지를 차지한다. ‘산처럼 쌓인 살구들은 녹색의 단단한 녀석부터 갈색의 말랑한 녀석까지 다양한 단계에 있었지만, 대부분은 우리가 살구라고 부르는 과일의 빛깔을 띠고 있었다.’(p.16) 침대 바닥을 온통 차지해버린 처치 곤란할 만큼 많은 양의 살구를 정리하면서 작가는 인생의 중요했던 굽이들을 되돌아본다. 약간씩 썩고 망가져가는 살구를 처리하면서 솔닛은 과거의 아픔을 떠올린다. 이를 끌어안아 보듬으며 고통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 생각하게 한다.  


유방에 생긴 종양을 치료하는 과정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등장하는 나병환자에 대한 작가의 단상은 ‘고통’이라는 감정으로 연결점을 찾는다. ‘신경이 없는 신체 부위도 살아 있기는 하지만, 자아를 규정하는 것은 고통과 감각이다. 당신이 느낄 수 없는 것은 당신이 아니다.’(p.153) 느낄 수 없는 것은 지켜줄 수도 없기 때문에 고통은 우리를 지켜주는 수단이 된다고 작가는 역설한다.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 감정이입은 다른 이의 고통을 감지하고 그것을 본인이 겪었던 고통과 비교해 해석함으로써 조금이나마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일이다..(중략) 신체적 고통이 자아의 신체적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동일시는 애정 어린 관심과 지지를 통해 더 큰 자아라는 지도의 경계선을 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다. 그러니까 사랑은 확장된다는 이야기다.’(p.158)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연결할 수 있는 상상력으로 인해 우리의 자아는 그만큼 확장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야기는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온다. 목차에서 보여지는 구조적인 회귀는 마치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중요한 것은 멀리 있지 않다는, 인생에 대한 은유와 같다. 각 챕터 뒤에 별도로 실린 에세이는 전체를 에워싸는 또 하나의 이야기로 책을 관통하며 겹을 더한다. 이 책이 마치 이야기속의 이야기처럼 두터움을 가진 듯 느끼게 해 주는 요소다. 살구로 시작된 작가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잼과 절임, 리큐어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전해졌다. 마치 작가의 글쓰기가 우리에게 도달한 것처럼.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의 사이는 물리적으로 멀어져야만 할 것을 종용받지만 정서적 연대는 우리를 삶의 늪에서 건져주는 열쇠가 될 것임을 솔닛은 말한다. 고립되어 있는 작은 섬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1)책날개 작가소개

2) 시사인 2017.9.14. ‘솔닛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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