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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Feb 27. 2021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만나다

서평 <빌린 책 산책 버린 책> by 장정일 (마티, 2010)

시인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장정일은 치열한 독서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정규 교육과정이라고는 중학교까지 받은게 전부지만 방대한 독서량와 뛰어난 필력, 확고한 주제의식으로 여러 저서를 남겼다.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 소설 <아담이 눈뜰 때>,<너에게 나를 보낸다>,<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등을 집필했고 최근 시집 <눈 속의 구조대>를 발표했다. 장정일은 ‘우리 사회의 위악성을 폭로하면서 독자에게 의도적인 불편함을 조성하고 전면적인 자기 폭로의 길을 걸어왔다’고 평가 받고 있다.1) 


 1993년부터 시작된 그의 독서일기는 <장정일의 독서일기>라는 이름으로 묶여 7권이 발행되었고 같은 제목을 부제로 한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의 3권이 더 출판되었다. ‘일기’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앞의 시리즈는 책을 읽은 날짜별로 자유롭게 서술돼 잡지 ‘책과 인생’에 연재된 것을 묶은 결과물이다. <독서일기>가 서평보다는 감상이나 흔적에 가깝다면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2010, 마티)은 좀 더 독자를 위한 편집에 신경을 쓴 모양새다. 책의 내용이나 방향성에 따라 카테고리로 나누고 뒤에 색인을 추가해 서평집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삶과 사회에 연결된 독서를 추구한 작가는 ‘독서를 파고 들면 들수록 도통하는 게 아니라 현실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말하며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책의 가장자리와 현실의 가장자리 사이로 난 길’이라고 서문에서 밝힌다. 장정일이 읽은 책의 목록과 서평은 독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반영한다. 그의 리스트는 <88만원 세대>,<삼성을 생각한다> 등 사회적 이슈를 일으켰던 책에서부터 <악!법이라고?>, <엄마를 부탁해> 등 만화와 소설까지 전방위에 걸쳐있다.  


‘복거일이나 고종석의 저작을 읽으며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적 이념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책을 온전히 읽은 게 아니다. 참된 독서란 내 앞에 주어진 개별적인 책을 읽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책을 생성한 유, 무형의 생산 현장 전체를 읽는 일이다’(p.43) 저자는 사회에서 책이 위치하는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서평의 대상 뿐 아니라 관련된 여러 서적과 영화까지도 예를 든다. 조정래의 소설 <오 하느님>으로 민족주의의 역설 담론을 펼치기 위해 엠마뉴엘 토드의 인문서 <제국의 몰락>에서 영화 <벤허>,<글래디에이터>,<라이언 일병 구하기>까지 예로 들며 서술한다. 


확신에 넘치는 작가의 주제의식과 뛰어난 필력이 돋보이는 장정일의 서평은 ‘독서일기’라는 포맷으로 10권의 시리즈를 20년 이상 계속되게 했다. 비록 자신의 목표(60세까지 20권의 독서일기를 내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 결과라고는 하지만 오랜 기간 계속되며 끊이지 않고 이어온 독서에 대한 집중력은 독자에게 작가의 독서력에 대한 신뢰 이상의 믿음을 준다. 그런 점 때문에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책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고 작가의 성차별에 대한 이중 잣대를 규탄하며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참여했던 부역자들의 ‘악의 평범성’을 질타한다. 작품을 읽지 못한 독자가 서평을 먼저 읽었다면 소설에 대한 자신의 평가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독자에게 책을 소개하는 서평의 역할보다는 장정일이라는 필터를 통해 독해한 결과물로서의 독서일기다.  


독자는 ‘현실로 되돌아오는 책읽기’라는, 독서에 대한 작가의 자세를 접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에게 어떻게 녹아들어 가는지 메타적인 시선에서의 관찰을 통해 사색의 진폭을 느끼며 생각의 근육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책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 장정일의 독서일기 시리즈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은 독서에 대한 또 하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작품이 아닐까. 나만의 독서일기를 써 보고 싶다면 장정일의 리스트를 한 번쯤 엿보는 것도 좋겠다.  




1)네이버 한국 현대문학 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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