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오리 Feb 11. 2021

나와 사회, 그리고 독서

 서평 <정희진처럼 읽기> (정희진, 교양인, 2014)

평화학·여성학 연구자인 정희진은 학문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지향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쓴 <페미니즘의 도전>은 우리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던 남성 위주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여성의 시선과 언어로서 인식을 전환할 수 있게 한 문제작이다.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여성주의 담론을 펼쳐오던 그가 한겨레에 ‘정희진의 어떤 메모’라는 칼럼으로 쓴 글을 모은 책이 <정희진처럼 읽기>(교양인, 2014)다.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라는 부제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은 ‘일단’ 서평집이다. 서지정보와 내용 소개,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 등 서평은 대개 책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기서는 그러한 요소들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사용한다. 내용을 소개하거나 요약하는 것조차 저자는 지양한다. 때로 책은 칼럼의 마지막에만 잠깐 등장하고 마는 경우도 있고 반면교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정희진은 언급된 책을 딛고 서서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관점을 펼쳐낸다.


저자가 책을 읽는 방법은 ‘지도그리기(mapping)’ 로 ‘읽고 있는 내용을 기존의 자기 지식에 배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는 자기 입장이 있어야’ 하고 전체 지식체계에서의 나의  위치와 그 세계에서의 책의 좌표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독자에게 책의 내용을 알려주기 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책을 소환한다. ‘글은 정치적 입장과 문장력으로 구별되는 것이지 학문, 잡문, 예술로 구별되지 않는’(p.17)다고 말한 것과 같이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한 예로 김동인의 소설 <운현궁의 봄>에서는 ‘시반선 행사(물고기에게 밥을 주는 자선행사)’를 들어 공권력의 무자비함과 자원을 아끼고 나누는 노동에 대해 환기하고 (p.135 ‘물고기 밥을 훔친 죄’) 일본어판 ‘빅 이슈’를 통해 민중을 억압하는 기존의 혁명 패러다임을 비판하고 삶을 이루는 일상의 혁명에 대해 통찰한다.(p.219 ‘혁명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정하는 것이다.’)


‘고통 받는 사람에겐 인생의 시시각각이 비상이고, 민중의 고통으로 품위를 유지하는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민중의 각성이 비상이다.’(p.205) 정희진은 ‘약자의 시선으로 타인과 사회를 탐구하고 새로운 세계를 모색’한다. 소수자의 입장에서 사회의 구조적인 폭력에 대해 고찰하는 그의 글은 독자에게 또 다른 방향에서의 관찰과 숙고를 요청한다.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에서 밥하기/먹기의 정치학을 통해 가사노동을 이슈화 한 것이 그 예다.  ‘공동체의 문제가 공유되고 약자의 고통이 가시화, 공감, 분담되는 ‘시끄러운 상황’이 평화다’(p.185)라고 일갈하며 인식론적 전환을 일으킨다. 독자는 수면아래 보이지 않던 세상을 발견하고 다양한 정치적 입장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제목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정희진을 전혀 모르는 독자라면 이 책을 선택하기 쉽지 않다. 인식의 변화를 주장한다면 좀 더 많은 독자에게 곁을 내 주는 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미 다른 저서나 칼럼을 통해 그를 알고 있었던 독자라면 환영할만한 책이지만 그를 모르는 사람, 나아가 그가 말하는 인식론적 전환이 필요한 대상들에게는 닿지 않는 책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학제를 넘나드는 그의 지식의 방대함과 다양한 독서에서 오는 큰 진폭의 인용들, 급진적인 목소리 등은 저자의 글이 어렵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정희진의 목소리를 통해 독자는 그가 어떻게 몸으로 책을 통과하는지 알게 되고 작가의 사유에 도달하게 한다. 책을 읽는 방법은 독자의 수 만큼 다양하겠지만 그 모든 독서에는 결국 ‘내’가 있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 존재한다. ‘공부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인식자가 자기에 대해 아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사회와 공유하는 것’(p.199)이라는 대목은 결국 그의 독서가 가리키고 있는 지향점이다. 정희진처럼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책을 통해 나를 알고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독서는 분명 또 다른 독후(讀後)의 세계다.

작가의 이전글 매혹됨에 매혹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