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오리 Mar 30. 2022

글쓰기라는 무대의 뒷 풍경

서평 <네 번째 원고> 존 맥피 (글항아리, 2020)

글쓰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한 번쯤은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을 맞아 풀리지 않는 문장에 괴로워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은유 작가는 ‘글 쓰는 사람에게 가장 외롭고 무력한 장소는 ‘빈 문서’ 앞’이라고 했을까. 많은 작가를 백지 앞에서 작아지게 만드는 글쓰기의 어려움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논픽션 내러티브 저널리스트’인 작가 존 맥피(1931~)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의 최근 에세이 <네 번째 원고>(글항아리,2020)에는 한 편의 논픽션을 완성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지난한 과정에 대한 여덟 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존 맥피는 1957년 ‘타임’ 매거진에서 기자로 일하기 시작해 1965년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요커’에서 전속 필자로 글을 쓰고 있다. 1975년부터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로 학부의 작가지망생들을 가르쳐 왔고, 그의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의 많은 수가 작가와 저널리스트,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네 번째 원고>는 그가 가르쳤던 글쓰기 강의록으로, 저자가 작업했던 논픽션이 쓰여진 과정, 구조, 편집자들과 발행인, 인터뷰를 끌어내는 법, 교정 교열과 팩트 체크의 일화 등이 실렸다.


‘내가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모조리 자신이 없고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곳에 갇혔다는 느낌이 든다면, 절대로 써내지 못할 것 같고 작가로서 재능이 없다는 확신이 든다면, 내 글이 실패작이 될 게 빤히 보이고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다면, 당신은 작가임이 틀림없다.’(p.257) 글을 쓰다가 막혔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맥피의 이 말에 120%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맞닥뜨린 이 벽은 나의 재능 없음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과정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니 계속 쓰는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글쓰기의 비법을 기대했던 독자는 저자가 글의 구조에 대해 고민하고 편집자들과 원고로 씨름하며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팩트 체커들의 일화에 당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용담과 같은 작가의 글쓰기 여정은 어느덧 독자를 무장해제시키고 만다. 대형 회색 곰을 만난 일화를 이용해 순환의 구조를 만든 이야기, ‘뉴요커’의 편집자들과 발행인에 대한 저자의 따뜻하면서도 유머 있는 시선(특히 비속어에 대한 편집자들의 자세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기엔 고색창연함마저 느끼게 한다), 2차 세계 대전 때 일본에서 날아온 풍선폭탄 사실 검증을 끈질기게 이어간 팩트 체커의 스토리들은 하나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이면에서 끊임없이 노고를 쏟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창의적 논픽션’은 그가 가르치고 있는 강의의 제목인 동시에 지향하는 글쓰기의 방향이다. 사실적 글쓰기인 논픽션에 ‘창의’라는 말은 낯설게 읽힐 수도 있지만, 작가는 ‘없는 걸 지어내는 게 아니라 가진 걸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라 말하며 작가가 쓰고자 택한 것, 그것을 시작하고 제시하는 방식, 사람들을 묘사하고 그들을 인물로서 발전시키는 기법과 솜씨, 산문의 리듬, 작문의 무결성, 글의 해부 구조 등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맥피는 사실에 대한 논픽션 작가로서의 자세를 분명히 한다. ‘문장의 리듬을 개선하기 위해 사실을 약간 변경하는 것은 잘못일까? 나는 그렇다고 알고 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정의상 논픽션을 쓰고 있는 게 아니다.’(p.181) 


<이전 세계의 연대기>(글항아리사이언스, 2021)를 제외한, 책에서 소개된 많은 논픽션들이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아 아쉬움은 남는다. 책에서 제시된 맥피의 저서들을 읽고 이 책을 읽는다면 더더욱 흥미로운 독서의 경험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맥피의 이 저서는 글쓰기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펜과 노트와 땀으로 이루어진 집필 과정의 이면 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한컷리뷰) 만화 <GYO의 리얼토크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