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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May 01. 2022

작가의 글쓰기, 그 이면과 배경

서평 <글쓰기에 대하여> 마거릿 애트우드, 프시케의 숲, 2021

‘글쓰기는 어둠, 그리고 욕망이나 충동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 들어가서 운이 좋으면 어둠을 밝히고 빛 속으로 무엇인가를 가지고 나오리라는 욕망 또는 충동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어둠, 그런 욕망에 대한 책이다.’(p. 25)


<글쓰기에 대하여>(프시케의 숲, 2021)는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1939~)의 자전적 경험과 작가론 강의를 엮은 에세이집이다. 작가는 2000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엠프슨 강의’ 프로그램 초청을 받아 2년간의 준비를 거친 뒤 여섯 차례 강의했고 그 내용을 정리해 책으로 엮었다. 1964년 첫 시집을 출간하며 시인, 소설가, 평론가로도 활약해 온 그는 다양한 장르의 소설과 평론, 시, 동화와 논픽션 등을 집필해왔다. 소설 <시녀이야기>로 1987년 아서 C.클라크 상, 2000년 <눈먼 암살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했고 매년 노벨문학상의 주요 후보로 거론되어오고 있다. 


애트우드는 책에서 작가로서의 글쓰기, 삶의 갈등,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에 대해 말한다. 그는 자신의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을 통해 경직된 전후 캐나다 사회에서 ‘여성작가’로서의 고단함을 이야기하며 무엇이 예술가로서의 작가를 만드는지, 예술적 열망은 어디서 오는지 묻는다. ‘글을 쓰는 작가’와 ‘생활인으로서의 작가’라는 이중적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돈이라는 세속적 가치와 예술지상주의 사이에 낀 예술가의 딜레마를 드러낸다. 


‘사람들이 예술 활동을 통제하며 예술가에게 간섭하는 지점은 ‘돈과 힘’이라고, 예술가가 예술 활동으로 사람들에게 간섭하는 지점은 ‘도덕 및 사회적 책임’이라 이름 붙일 수 있습니다.’(p.152) 애트우드는 예술작품의 도덕적 사회적 책임문제를 통해 작가와 보편적 인류와의 관계를 살펴본다. 윤리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작가가 원하는 작품의 방향인가? 애트우드는 사회적 의미를 정하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라고 이야기한다. 


아홉 살이었던 애트우드는 ‘브라우니즈’라는 비밀 단체의 모임장 ‘갈색 올빼미’에게 보여주고 그녀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작은 책을 만들었다. 아마도 이 경험은 애트우드에게 독자를 가진 작가가 맛볼 수 있는 만족감을 최초로 맛볼 수 있게 해 준 사건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작가가 글을 쓰는 건 바로 ’독자‘를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아닌, ’당신‘인 독자를 위해. ’친애하는 독자‘를 위해. ’갈색 올빼미‘와 ’신‘의 중간 어디쯤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독자를 위해.’(p.214)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작가지만 문학의 생태계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독자라는 수신인이 필요하다. 


문학이라는 거대한 세계의 주변국인 캐나다에서 자란 애트우드는 자신을 작가로 키운 수많은 작품들을 호출해낸다. 셰익스피어와 조지 오웰, 수전 손택에서 플라톤까지, 시공을 넘나들며 200명이 훌쩍 넘는 작가와 그보다 많은 작품들이 등장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도 있는 반면 생소한 경우도 있어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넘나들며 ‘작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애트우드만의 박식하면서도 위트있는 시선이 돋보이는 이 책은 글을 쓰는 작가의 내면과 고뇌, 사회적인 위치, 글 쓰는 동기 등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한다. 각 챕터의 유기적 연결로 작가의 주장이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전달된다기 보다는 넘치는 이야기거리로 어쩌면 산만하다고까지 느낄 수 있는 애트우드의 강의와 매끄럽지 않은 번역이 맞물려 중간 중간 이해가 어려워지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쉽지만, 그의 소설을 접했던 독자라면 다양하고 폭넓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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