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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May 13. 2022

중국의 현실을 직시하며 작가로 살아가기

서평 <침묵과 한숨> 옌롄커 (2020, 글항아리)

옌롄커(1958~)는 위화, 모옌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알려진 중국의 소설가다. 1978년부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한 그는 <일광유년>, <레닌의 키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딩씨 마을의 꿈> 등의 작품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는다. 하지만 중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민감한 소재의 작품은 당국의 강압적인 탄압을 받는다. <침묵과 한숨>(글항아리, 2020)은 그가 2013년 약 한 달에 걸쳐 미국의 10여 개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책으로, ‘평소에 중국에서는 말하고 싶어도 감히 말할 수 없었던,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p.7)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으로 중국 공산당이 독재하는 중국은 문화 대혁명과 6.4 학생운동을 거치며 광란의 역사를 통과하지만 중앙정부에 의한 금언의 정책은 과거의 기억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게 만든다. 작가는 ‘국가적 기억상실’은 문학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문인들이 정치적 발언을 금기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옌롄커는 오랜 기간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며 글을 써 왔지만, <레닌의 키스>를 발표한 후 홍콩 봉황 TV와의 인터뷰 내용이 문제가 되어 순식간에 군에서 쫓겨난다. 2011년에는 중국 작가로서는 유일하게 사회 발전 과정에서 집이 강제 철거되는 사건을 겪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중국의 현실과 역사에 대한 대치와 관심’(p.253)을 포기하지 않고 강경한 글쓰기를 계속 이어간다. ‘내가 경험한 중국, 문학, 그리고 글쓰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옌롄커는 책을 통해 문학에 대한 자신의 소회와 중국에서의 글쓰기의 특수성, 금서와 쟁론에 대한 견해, 자신의 이상 등을 거침없이 펼쳐낸다.


‘가장 많은 쟁론의 대상이 되고’, ‘금서가 가장 많은 작가’(p.113)이기도 한 옌롄커는 문학이 독립성을 갖기를 주장한다. ‘세상의 어떤 국가나 지역의 현실도 중국만큼 부조리하고 복잡하며 풍부할 수 없고, 중국인들의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실제 이야기들은 전 세계 모든 작가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상상하기 어렵고 전설적이며 고전적이다’ (p.144) 작가는 중국에서 벌어지는 믿기 힘든 여러 사건들을 언급하며 중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검열과 권력에 대한 양보와 타협’은 작가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이기 때문이다.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강경한 태도의 글쓰기를 지향하는 작가는 그러나 권력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서도 고백한다. 권력에 의해 요동치는 삶을 살았던 옌롄커는 마치 무서워하는 아이가 ‘무섭지 않다’고 외치는 것처럼 두려움을 자인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말한다. 두려움을 인정하는 그의 태도는 권력에 상관없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글쓰기를 다짐하게 만든다. 


검열과 금서조치는 우리에게도 낯선 문화가 아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권력을 힘으로 장악하려는 세력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 행태다. 엄혹한 시대가 만드는 이러한 문학의 왜곡은 ‘1989년 6월 4일’을 ‘1990년에서 한 해 모자라는 해의 5월 35일’(p.154)이라고 말하게 만드는 것 같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만들게 된다. ‘오늘날의 중국은 세계의 태양이자 빛인 동시에 세계의 거대한 걱정이자 어두운 그림자인 것 같다.’(p.22) 그는 중국에서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의 지난함과 고민, 갈등과 두려움을 이 책을 통해 가감 없이 펼쳐낸다. 


국가와 사회의 현실에 눈 돌리지 않는 글쓰기를 하는 그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글을 쓸 때에만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고 말하며 인간과 개인에 대한 감수성과 따스함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중국과 같이 권력에 의해 왜곡된 사회에서 자신을 배반하지 않는 글을 쓰기 위해 작가는 생존을 담보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한 작가의 삶과 작품론, 고뇌와 지향점 등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동시에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면서도 알 수 없는 기이함을 가진 중국의 민낯을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다만 작가에 대한 연표와 작품 소개 등 작가에 대한 정보의 부재와 본문에 소개되는 중국 작가들에 대한 각주의 부족은 아쉬움을 남긴다. 중국에 대해, 중국에서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현실과 역사 사이에서 일어나는 극도의 긴장과 불안 속에서의 글쓰기에 대해 궁금한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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