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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Feb 12. 2023

자신의 목소리로 치열하게 살아낸 거인, 토니 모리슨

서평 <보이지 않는 잉크> 토니모리슨, 이다희 옮김(바다출판사, 2021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남긴 말이다.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품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목소리 보다는 보편성에 무게를 두기도 한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은 결국 모든 창의적 결과물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고유한 숨결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은 ‘흑인’과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그의 창조성의 원천으로 삼았던 미국 흑인 문학의 대모다. ‘당신이 읽고 싶은 글이 있는데 아직 쓰인게 없다면 당신이 써야한다’는 말로도 알려져 있는 그의 소신은 일하면서 글 쓰는 삶으로 이어지고 결국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1970년 마흔의 나이에 첫 소설 <가장 푸른 눈>을 발표했고 <술라>,<솔로몬의 노래>,<빌러비드> 등의 소설을 발표하며 흑인의 정체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탐색했다. 


<보이지 않는 잉크>(바다출판사, 2021)는 모리슨이 남긴 다양한 연설과 강연, 수상소감, 칼럼 등을 모은 산문집으로, 자신의 문학세계를 설명하는 ‘창작노트’를 수록하고 있다. 책은 4부로 구성되어 각각 문학의 본질과 인종에 대한 고찰, 여성으로서의 시선, 예술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양한 자리에서 발화된 그의 생각들은 사회와 문화, 예술의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인종과 젠더, 타자, 문학, 세계주의, 아프리카니즘 등에 대해 견해를 펼친다. 그의 사유가 담긴 이 책은 그야말로 토니 모리슨의 광범위한 지성과 통찰의 결정체다. 


작가가 소설에서 의도했던 여러 의미들에 대한 ‘창작노트’는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가장 푸른 눈>, <술라>, <타르 베이비>, <빌러비드>등의 첫 문장은 종속절도 없는 간단한 단문이지만 그 의도는 간단하지 않았다. ‘다들 쉬쉬하지만 1941년 가을에는 금잔화가 보이지 않았다.’(<가장 푸른 눈>) 때로는 독자와의 즉각적인 친밀감을 위해, 이야기가 진행되는 배경의 암시를 위해, 텍스트의 음악적 강세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작가의 이러한 창작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에게 독서의 또 다른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다. 작가인 동시에 뛰어난 독자이기도 했던 모리슨은 ‘독자가 서사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특히 쓰기를 돕도록 노골적으로 요구’한다고 인정하면서 행간의 의미를 탐구하는 독자의 읽기를 강조한다. 


여러 소설 속에서 타자화 되었던 흑인의 삶이 모리슨에 의해 자아를 획득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에 그의 문학적 성취가 있다. ‘서사는 지식이 체계화되는 한 방식이다. 나는 언제나 서사가 지식을 전달하고 전달받는 가장 중요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p.91) 모리슨은 흑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소설로 전달하기 위해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의 소설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피부색으로 인한 갈등의 내면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세밀하게 보여준다. ‘문제와 모순을 회피하기보다 관찰함으로써 그렇게 해야 한다. 결코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명확하게 드러내 보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p.92) 이것은 단지 문학의 정치성만이 아니라, 예술 전반에도 해당되지 않을 수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대가를 넘어선 여행, 비용을 넘어선 여행을 떠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래야 마땅한 모습으로 목격하도록 권유합니다.”(p. 368) 토니 모리슨은 예술이 어떻게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우리시대의 

구루다.


‘늘 인종이 먼저 거론되는 작가’였던 토니 모리슨은 자신의 언어를 벼리며 백인 남성 위주의 미국 문학계와 강조되는 인종 표현 속에 왜곡되는 흑인에 대한 편견을 바로 세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미국작가 보다는 흑인 작가이기를 주장했던 그는 도덕적 상상력을 펼치는 작가와 문학의 힘을 역설한다. “작가의 삶과 글쓰기는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이 아닙니다. 인류에게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p.16) 식민지와 노예제를 거쳐 온 미국이라는 사회의 특수성과 인종차별의 뿌리 깊은 역사는 우리에게 와 닿지 않을 수 있지만, 혐오와 차별, 편견과 증오가 만연한 지금의 우리사회에 토니 모리슨의 목소리는 큰 울림을 갖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던 거인 토니 모리슨의 사유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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