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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Feb 15. 2023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

서평 <빌러비드> 토니 모리슨 (2003, 들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여성 작가인 토니 모리슨(1931~2019)은 1970년 소설 <가장 푸른 눈>으로 데뷔한 이래 11편의 소설과 다수의 에세이를 발표한,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명이다.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난 그는 하워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코넬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랜덤하우스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역사와 신화, 세속적인 것과 환상적인 것을 이음새 없이 매끄러운 한 편의 음악으로 엮어내는 탁월한 이야기꾼’1)으로 알려진 그는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서술로 평단과 독자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1987년에 발표한 <빌러비드>는 그의 대표작으로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로버트 F.케네디 상 등을 수상하면서 다수의 기관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명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시어머니 ‘베이비 석스’가 죽고 난 신시내티 블루스톤 로드 124번지에는 아기 유령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모녀 ‘시이드’와 ‘덴버’ 둘만 살던 이 집에 어느날 예전 켄터키의 농장에서 같이 살던 ‘폴 디’가 18년 만에 찾아온다. 시이드를 사랑했던 폴 디는 남북전쟁 이후 농장을 탈출해 떠돌다가 그녀의 집에 정착을 시도하지만, 엄마를 유일한 동반자로 여기던 덴버는 그가 달갑지 않다. 어느날 시이드의 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의 이름은 ‘빌러비드(beloved)’로, 시이드가 딸의 무덤에 새겨 준 단어와 같았다. 어린아이같은 순진함을 가진 빌러비드는 시이드에게 맹목적으로 집착하고, 시이드와 덴버 또한 그녀를 곁에 두기 위해 필사적이 된다. 


“독자가 되길 원했어요. 쓸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썼거나 혹은 쓸 거라고 생각했죠. 첫 번째 책을 쓴 이유는 단지 그런 책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완성해서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토니 모리슨은 이 작품을 통해 남북전쟁 직후 재건의 시기를 배경으로 흑인 여성 노예의 서사를 구축했다. 백인에 의해 쓰여진 - 해리엇 비쳐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나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 - 노예에 대한 소설은 이미 존재하지만, ‘여성’과 ‘흑인’이라는 정체성은 소수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되새기며 인간에 대한 존엄이라는 작품속 강력한 주제의식에 힘을 싣는다. ‘사랑 받은 사람’(Beloved)이라는 제목과 달리 사랑받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아픈 과거에 초점을 맞춘다.


여덟 아이를 낳지만 자식들이 자신도 모르는 새 팔려가 버리기도 하고, 도망가다 발각되어 심한 매질을 당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딸의 묘비명을 새기기 위해 비문을 새기는 남자에게 몸을 팔고, 헛간에 갇혀 백인 부자에게 날마다 강간을 당하는 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차마 말로 다 하지 못할 수난을 겪는다. 하지만 그 정점에는, 다시 잡혀 노예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젖먹이 딸을 살해한 시이드의 ‘광기’가 있다. 1856년 마가렛 가아너라는 흑인 여자 노예가 노예 사냥꾼에게 잡히게 될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막내딸을 죽여버린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대목은 노예 제도의 비인간성을 역설한다. 


노예 해방을 선언한 남북 전쟁 이후 150년이 지났지만 인종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다양성의 존중은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첫 번째 단추다. 사랑받지 못했던 ‘6천만명 그리고 그 이상’2)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는 것은 그래서 의미를 갖는다. 시이드를 비난하며 떠났던 폴 디 또한 다시 돌아와 그녀의 곁을 지키게 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시이드, 당신하고 나, 우리한테는 누구보다 어제가 많아. 이제 어떤 식으로든 내일이 필요해.”, “당신, 당신이 제일 귀해. 시이드 당신이.”’(p.453) ‘Black Lives Matter’를 외치는 지금의 미국에, 그리고 이 세상에 절실한 것은 타인에 대한 감수성의 회복이다. 


토니 모리슨은 환상적인 설정-죽은 딸이 빌러비드가 되어 자신을 죽인 어머니와 동생에게 돌아오게 되는-과 시적인 묘사로 적지 않은 분량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주의를 붙들어맨다.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이어지는 전개는 사건에 대한 주의깊은 집중을 요구하며 등장인물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이입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오로지 작가들만이 특정 종류의 트라우마를 번역할 수 있으며, 슬픔을 의미로 바꿈으로서 도덕적 상상력을 벼릴 수 있’3)다고 말했던 그는 ‘문학의 위대한 대변인’ 보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를 우선으로 삼았다. 그만큼 자신의 뿌리에서 출발한 글쓰기를 중요시했던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인종과 차별에 대한 인류의 역사를 직시함으로서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일독을 권한다



1) <작가란 무엇인가>(다른,2019) p.799

2) 소설 맨 앞에 작가가 남긴 헌사

3) <보이지 않는 잉크> (바다출판사, 2021)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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