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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Jan 23. 2024

좋아하는 마음이 나를 만든다

<아무튼, 하루키> 이지수 지음 (2020, 제철소)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가 되는, 당신에게는 그런 한 가지가 있나요?’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아무튼 시리즈’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의 세 출판사에 의해 2017년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50여권에 이르는 책은 피트니스, 술, 요가, 피아노, 양말, 심지어 당근마켓까지 다종다양한 분야에 걸쳐 ‘좋아한다는 것의 좋음’을 피력해왔다. <아무튼, 하루키>(제철소, 2020)는 번역가 이지수의 첫 에세이집으로, 하루키의 책과 함께 했던 삶의 순간들을 담았다.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현존하는 일본 작가 중 한 사람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1979년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등단한 뒤 지금까지도 새로운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킬 만큼 인지도 높은 소설가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그는 ‘하루키스트’라고 불리는 팬 층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이지수 작가는 하루키에 대한 팬심을 유머와 온기로 풀어냈다.


책에 실린 열 네 편의 에세이에는 인생의 어느 시간을 함께 했던 하루키의 작품들이 있다. 저자는 그의 작품을 원서로 읽기 위해 히라가나도 모른 채 일문과에 지원할 만큼 그의 소설에 몰두한다. 모든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이지수 작가는 ‘청춘의 한복판에 서보기도 전에 청춘을 한바탕 겪은 듯한 느낌을 맛보여주’기 때문에, 그 ‘습하고 나른한, 떠올리면 조금은 슬퍼지는 세계’를 사랑했다고 말한다.(p.12) 하루키와의 첫 만남이었던 중학생 시절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노르웨이의 숲>, 남편과의 연애담과 함께한 <스푸트니크의 연인> 등 하루키의 작품이 작가의 사연과 함께 소개된다. 


“하루키는 나에게 작가가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근사한 경험을 안겨줬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그 작가의 저작과 함께 보내게 해준 것. 그리하여 나의 내면과 삶이 실제로 어떤 변화를 일으킨 것. 그것만으로도 노벨문학상을 받든 말든 하루키는 나에게 언제까지나 가장 특별한 작가일 터다.”(p.166) 혹자는 하루키가 ‘청춘을 대표하는 소설가’라고 치부하며 젊은이들이 한때 좋아하는 작가라 말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하루키로 인해 인생의 방향이 바뀔 만큼 진심으로 그의 작품을 애정한다. 아마도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이 책도 읽게 될 확률이 높겠지만, 무엇인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 자체로도 독자의 마음은 몽글몽글 푸근해진다. (어쩌면 이것은 ‘아무튼’시리즈 전체가 갖는 미덕일지도 모른다.) 하루키의 스타일이나 작품 내용 등에 대한 별도의 설명은 없기 때문에 하루키를 모르거나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면 이해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하루키를 좋아하는, 좋아했던 독자라면 많은 부분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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