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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Mar 20. 2024

러시아 어머니의 인내와 희생

<소네치카/스페이드의 여왕>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문학동네, 2023)

흔히 푸시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로 대표되는 러시아문학에 ‘강렬하고 우아한 여성서사’를 탄생시킨 소설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1943~)는 ‘생존하는 러시아 작가중 해외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생물학을 전공하고 유전학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중 지하출판물을 소장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후 모스크바의 히브리어 극장에서 각본가, 감독으로 일했다. 구소련이 붕괴되던 혼란한 시기에 첫 중편소설 <소네치카>(1992)로 러시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고 프랑스 메디치상과 이탈리아의 주세페 아체르비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2012년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하며 우리나라에도 그의 작품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대표적인 두 중편소설을 묶은 것이 <소네치카·스페이드의 여왕>이다.


<소네치카>의 주인공 ‘소냐’는 강렬한 독서욕을 가진 소녀다. 전쟁의 황폐한 시기에 도서관의 지하 보관실에서 일하던 그녀는 중년 화가인 ‘로베르토 빅토로비치’를 만나 결혼하고 딸 ‘타냐’를 낳는다. 새롭게 꾸린 가정은 그녀에게 부양에 대한 의무를 부여했고 소냐는 점차 노련한 주부가 되어간다. 우연한 기회에 로베르토 빅토르비치는 화가로서 자리를 잡아나가게 되면서 소냐의 가정은 경제적인 안정을 찾는다. 청년이 된 타냐가 같은 반 동급생이자 폴란드 출신인 ‘야샤’를 흠모해 집으로 초대하게 되고, 전쟁의 참화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해 영악해질 수 밖에 없었던 야샤는 늙은 화가를 애인으로 만든다.


“마치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책에 빠져 있다가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가 되어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p.10) 소네치카지만 가정을 일구고 돌보아야 할 아이가 생기자 “지극히 현실적인 안주인”(p.40)이 되어간다. 러시아가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으로 탈바꿈하고 세계대전을 거치는 격동의 시간속에서 가정을 지키기 위한 필부필부(匹夫匹婦)의 고난은 그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상함을 타고난 로베르트 빅토로비치와 그런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젊고 어린 타냐는 일용할 양식과 관련된 일이라면 모두 소네치카의 몫으로 남겨두고, 자신들은 선택된 지적인 엘리트들이 누리는 복지를 요구하곤 했다.”(p.58) 소네치카의 헌신으로 가족들은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게 누린다. 남편에게 젊은 애인이 생겼음을 알았을 때 조차 그녀는 흔쾌히 야샤를 집에 들이고 딸처럼 대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하는 주인공의 희생으로 인해 그녀의 딸들이 자신의 길을 나아가게 된다는 결말은 모성의 가치에 대한 찬사로 읽힐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희생이 없이는 격동의 시기를 이겨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내밀한 외침이 녹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 딸과 남편에게 펼쳐지는 멋진 삶은 러시아 안이 아닌 밖에서 이루어진다. 소네치카의 희생을 바탕으로 로베르토 빅토로비치는 세계적인 명성의 화가가 되고 딸 타샤는 유엔에서 좋은 자리를 얻어 스위스에 정착한다. ‘둘째 딸’ 야샤 또한 소냐의 도움을 받아 폴란드로 돌아간 후 ‘잘생기고 젊은 프랑스 부자’와 결혼해 파리에 자리잡는다. 가족을 모두 떠나보낸 후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소네치카에게 유일한 기쁨은 책이었고, 러시아 문학이었다. 


또다른 중편 <스페이드의 여왕>에서도 현재의 고난을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를 벗어나려는 등장인물들의 안간힘이 펼쳐진다. 집안의 군주로 군림하는 할머니 ‘무르’와 그의 딸 ‘안나 표도로브나’, 안나의 딸 ‘카탸’와 아이들까지 4대가 함께 사는 이야기는 러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압축했다고 평가받는다.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에 묻혀 사는 할머니 무르는 모든 가족을 자신의 시종 부리듯 한다. 안과의사를 하며 가장노릇을 하는 안나는 어머니의 변덕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싫은 소리 하나 하지 않는다. 어느날 전 남편 ‘마레크’가 집을 방문하고 그리스로의 초대장을 보내면서 안나는 처음으로 어머니에게의 반항을 준비한다. 


푸시킨의 단편 <스페이드의 여왕>과 동명인 이 작품은 작가의 러시아 문학에 대한 경애를 나타냄과 동시에 폭력이 만연했던 소비에트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삶을  재현한다.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면서도 윗세대의 핍박을 받는 안나의 삶은 녹록치 않고 계속되는 어머니 무르의 괴팍함으로 인해 피로는 누적될 뿐이다. 이때 외부에서 온 그리스행 티켓은 지금의 고난을 벗어나게 해 주는 열쇠가 되어주는데 그조차도 안나에게는 도달하기 힘든 미션이다. 아래 위 세대의 부하를 온 몸으로 버텨내는 안나의 모습은 한 시대를 지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러시아 어머니의 인내와 희생을 그대로 드러낸다.


울리츠카야는 여성의 인내와 희생이 삶의 역경-가난과 정치적 부자유등을 포함하는-을 이겨나갈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었음을 보여준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케케묵은 시절의 가치관으로 폄하할 수도 있지만, 러시아에서 소비에트로, 다시 러시아로 나라의 정체성이 요동치던 시기를 치열하게 살아냈던 전(前) 세대의 입장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울리츠카야의 소설은 지금의 러시아를 있게 해 준 어머니들의 서사를 통해 러시아라는 사회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책의 곳곳에 포진한 러시아 문학의 흔적들 또한 러시아 고전문학에 대한 자연스러운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울리츠카야. 전쟁의 광기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작가의 메시지는 러시아의 남아있는 양심의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 러시아 여성 서사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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