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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May 18. 2024

철학자, 문학에 대한 본질을 파헤치다

서평 <문학이란 무엇인가> 장 폴 사르트르(민음사 1998)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는 소설, 시나리오, 문학비평 등 다양한 저서를 집필한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 사회학, 심리학을 전공하고 철학서 <존재와 무>(1943), 소설 <구토>(1938), 희곡 <닫힌 방> (1944)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사르트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 사상을 대표하며 반자본주의, 친 공산주의적 사상을 가진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참여적 발언과 평론을 아끼지 않았다. <문학이란 무엇인가>(1947)는 사르트르의 대표적인 비평서로 ‘문학의 사명’에 대한 이론적 접근과 논증을 펼친다.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글쓰기인가’, ‘누구를 위하여 쓰는가’의 세 질문을 던지며 그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펼치고 ‘1947년 작가의 상황’의 장에서는 위에서 던진 질문을 바탕으로 그 당시의 상황을 조망하며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숙고한다. 참여문학에 대한 대중의 비판에 포문을 열면서 시작된 글은 ‘유럽과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능성’과 결부된 문학의 역할을 제시하며 마무리된다.


“작가란 세계와 특히 인간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이기를 선택한 사람인데, 그 목적은 이렇게 드러낸 대상 앞에서 그들이 전적(全的)인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p.33) 사르트르는 작가의 역할이 독자에게 이 세계를 인식하게 만들어 더 이상 모른척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며, 작가는 ‘결연한 의지와 선택과 저마다 삶을 추구하는 전체적 기도의 인간’으로서 ‘참여’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작가가 창조하는 문학은 읽기의 행위가 동반되어야만 비로소 의미가 생기기 때문에 독자의 노력이 결합되어야만 의미를 갖게 되며, 그렇게 때문에 “예술은 타인을 위해서만, 그리고 타인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것”(p.64)이라고 주장한다. 문학 뿐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 등 모든 예술에는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타인’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독자에 대한 사르트르의 탐구는 한층 더 전진한다. 그는 “모든 정신적 작품은 그것이 겨냥하는 독자의 이미지를 그 자체 속에 간직하고 있다”(p.100)고 말하며 흑인작가 리처드 라이트(1908~1960)의 작품을 통해 세심하게 접근한다. 소외된 흑인들의 고통과 억압적 현실에 대한 라이트의 작품이 겨냥하는 독자는 북부의 유식한 흑인과 선의를 가진 백인들로 한정지어질 수 있다. 같은 환경으로 공감대가 이미 형성된 흑인독자와, 아무리 선의를 가졌다 해도 타자일 수밖에 없는 백인 독자라는 두 계층 사이의 단절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분열된 독자로 인해 라이트는 모든 문장에서 두 독자층을 위한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을 것이고, 사르트르는 이것이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 말한다.


고전적인 문학의 가치와 의미는 전통에 의해 이미 결정되었기 때문에 독자와 작가의 이데올로기적 거리는 크게 멀지 않았고, 이는 17세기까지 유럽을 지배한 보편적인 정서였다. 18세기로 넘어오면서 등장한 부르주아 계급은 독자층의 격변을 일으키고 작가의 지위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르트르는 부르주아일 수밖에 없는 프랑스 작가들의 입장을 소환하며 문학이 해야 할 일을 설파한다. “수려한 문체로 폐단이나 부정을 고발하고, 부르주아 계급의 심리를 부정적 각도에서 멋있게 파헤치고, 또 사회주의 정당들을 위해서 펜을 드는 것조차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문학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문학’의 입장에 서야 한다. 왜냐하면 문학은 본질적으로 입장의 표명이기 때문이다.”(p.365) 사르트르는 이 책을 통해 문학의 정치적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며 앙가주망(참여)으로서의 문학론을 역설한다. 


문학과 작가, 독자를 사회적 관계에서 조망하며 정치적인 측면을 대두시키는 사르트르의 이 책은 문학에 대한 기능과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양대 세계대전을 치른 후 쓰인 이 책이 지금에까지 유효한 것은 그가 던진 질문들이 끝나지 않는, 끝날 수 없는 화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주장했던 문학의 정치적 사회적 변혁으로서의 역할을 현재에도 적용하기에는 많은 것이 변했지만, 이데올로기와 부르주아의 정체성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흔적들은 우리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해 준다. 유럽의 사상사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사르트르의 고찰은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면 따라가기 쉽지 않다. 역주를 통해 수시로 끼어드는 역자의 개입 또한 그만큼 난해한 내용이라는 반증으로 읽힐 수 있겠다. 독해가 쉽지는 않지만 철학자이면서도 뛰어난 문학가였던 사르트르의 사상을 접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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