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지음 (비채, 2023)
“어떤 소설가들에게 소설은 인생의 경험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겠지만 내게 소설은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사고하는 방식이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과거에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체험할 수 없었던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체험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이 세상을 똑똑히 볼 수 없어서 글을 쓰고, 내면의 불안과 무지 때문에 소설을 쓴다.”(작가의 말, p.459)
우밍이(吳明益,1971~)는 현대 대만의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1997년 소설집 <오늘은 휴일>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에세이 <나비탐미기>, 장편소설 <수면의 항로>, <복안인> 등을 집필했다. 대만 최초로 2018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올라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장편소설 <도둑맞은 자전거>(2015)는 오래된 자전거를 매개로 전쟁과 가족사, 나아가 아시아의 역사까지 아우르며 장대한 세계를 구축한다.
소설가 ‘청’의 아버지 ‘싼랑’은 1993년 어느 날 갑자기 자전거와 함께 사라진다. 아버지의 실종에 일말의 의문을 품고 있던 청은 20여 년이 지난 후 아버지가 타던 자전거를 발견하게 되고, 자전거의 소유주를 찾아 나선다. ‘민간 고물 수집 특파원’을 자처하며 오래된 물건들을 모으는 ‘아부’, 대만 원주민인 쩌우족 ‘바쑤야’와 그의 아들인 사진가 ‘압바스’, 압바스와 자전거로 연결된 ‘라오쩌우’, 나비 수공업으로 생계를 잇던 엄마에 대한 글을 쓰는 ‘사비나’와 사비나의 엄마에게 자전거를 준 ‘무 분대장’, 동물원에 대한 강렬한 기억으로 그림을 그리는 ‘스즈코’ 등과의 만남을 통해 주인공은 아버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 나간다.
작가는 자전거의 흔적을 쫓는 주인공의 이야기와 대만에서 생산된 자전거의 역사를 교차시키며 소설을 전개시킨다. 작가의 전작 소설인 <수면의 항로>에 등장했던 소년공의 설정이 주인공의 아버지 이야기로 등장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잃어버린 자전거’에 대한 독자의 편지로 인해 청은 아버지의 자전거의 궤적을 쫓는다. (실제로 작가는 이러한 독자의 문의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타이베이의 랜드마크였던 주상복합 상가인 중화상창, 일치시대(일본의 대만 지배 시기)를 거쳐 온 문화적 배경, 2차 대전 당시 미얀마의 밀림 속 상황 등 소설에 등장하는 배경의 묘사는 치밀하고 선명하다. “나뭇잎은 칼처럼 제각각 반짝이고, 총탄 불꽃이 나뭇잎 사이를 새처럼 들락거리며 나무 주위에 불 그물을 만들었다. 나무를 죽이려는 불길이 밀림과 초원에서 계속 날아왔지만 나무는 포화匏花로 응답했다. 잎사귀가 촘촘하게 매달린 나무가 웅크린 고슴도치처럼 보였다.”(p.382) 시대를 풍미했던 자전거들에 대한 설명과 여기에 얽힌 개인사는 ‘철마지(Bike Note)’라고 명명되어 별도의 장으로 묶였는데, 물건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애정 어린 시선은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드는 또 다른 포인트다. 책의 곳곳에 포진한 해당 자전거 모델의 세밀화와 오래된 책을 보는 듯한 챕터의 디자인은 소설 속의 이야기가 단지 가상의 공간이 아닌, 구체성을 갖는 물성의 존재를 느끼게 해 주는 듯하다. 실제로 소설의 집필을 위해 오래된 자전거의 부품을 사 모으고 수리, 복원했다는 우밍이의 에피소드에서 독자는 도구를 만들고 보존하며 애정하는 인간에 대한 작가의 경의를 느낄 수 있다.
아버지의 자전거가 지나온 궤적은 대만, 나아가 동남아시아의 굴곡진 역사와 조우한다. 일본의 병기창에서 일했던 싼랑과 중국군으로 일본군과 싸웠던 무 분대장은 각자의 상처를 서로에게서 확인한다. 압바스의 아버지 바쑤야는 신분의 차별을 벗어나기 위해 일본군에 편입하고 은륜부대원이 되어 북미얀마의 밀림 속을 헤맨다. “전쟁은 우기처럼 왔다가 모든 사람이 절대로 다시는 태양을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할 때 돌연 끝났다. 우리 같은 흰개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p.275) 전쟁은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다. 위안산동물원의 동물들은 공습이 가까워지자 전기충격으로 ‘처치’되고 미얀마의 코끼리 ‘아메이’는 중국으로 옮겨지기 위해 1천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떠난다. 우밍이는 언 듯 보기엔 아무 관계없어 보이는 인물들을 그물처럼 연결해 인과관계를 만들며 ‘마음껏 사랑할 수도 애도할 수도 없었던’ 시대의 아픔을 촘촘하게 직조한다.
상실과 이별, 삶과 죽음은 소설의 흔한 소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우밍이는 현실과 환상의 절묘한 조합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고증 또한 작품에 힘을 싣는 주요한 요소다. 일치시대를 지나며 스며든 일본식 표현과 함께 대만의 자연과 사람들을 묘사하는 그의 글은 중국도 일본도 아닌 대만 작가로서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엇보다 도구에 대한 그의 애정과 경의, 인간에 대한 연민은 작가가 창조해 낸 인간 군상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460여 페이지의 두툼한 분량은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작가가 구축한 높은 밀도의 이야기를 통과하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의 다음 소설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