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같은 글쓰기> 아니 에르노 (문학동네, 2005)
“내가 이야기의 형식을 쇄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안개에 싸인 듯한 불분명한 것-쓰고자 하는 대상의 리얼리티-을 글로 옮기는 데 적합한 형태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 형태는 결코 미리 주어지지 않습니다.”(p.71)
‘체험하지 않은 현실은 쓰지 않겠다’라는 글쓰기의 태도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1940~)는 1974년 소설 <빈 장롱>으로 등단한 이래 자전적인 요소를 담은 많은 책을 발표했다. 자신의 낙태를 묘사한 <사건>,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다룬 <단순한 열정> 등 작품에서 등장하는 소재의 파격과 사실성, 선정성은 프랑스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계급을 드러냄으로써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그의 작품은 여성혐오와 보수적 시선들을 가진 이들에게 저항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아니 에르노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글쓰기를 고수했다. 프랑스 태생의 멕시코 작가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는 그러한 에르노의 태도에 경의를 표하며 글쓰기에 관련된 문제와 그의 작품에 대해 이메일로 대담을 나누기를 제안했고, 1년여에 걸친 문답의 결과는 <칼 같은 글쓰기>(2003)라는 대담집으로 만들어졌다.
가난한 소시민의 딸로 태어나 중등학교 교사를 거쳐 대학교수가 된 아르노는 부르주아 사회에 편입하게 된 자신을 돌아보며 출신 사회계층을 배반했다는 근원적 죄의식과 불편함을 갖게 된다. 글쓰기조차도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어떤 안락한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 글쓰기를 하는 것’(p.69)만이 그러한 삶을 ‘속죄’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겪었던 서민의 생활과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리얼리티를 드러내는 작업이 되었고, ‘지배자들의 언어도구’를 통해 ‘피지배자들의 관점을 문학 속으로 침입 혹은 난입’(p.102)시키는 결과물이 되었다. “내겐 글쓰기가 칼처럼 느껴져요. 거의 무기처럼 느껴지죠. 내겐 그게 필요해요.”(p.47) 거리 두기를 통해 객관화된 시선을 갖게 된 그는 절제된 감정으로 정확하고 첨예하게 진실을 탐구한다.
기존의 언론과 문학세력은 이러한 에르노의 글쓰기가 문학의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태도라고 여기며 불편하게 바라보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계급의식과 치열한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출산된 그의 글은 몇몇 대중매체에 의해 외설작가라는 멸시와 모욕을 당했음에도 많은 독자들에게 ‘나의 이야기 같다’라는 찬사를 들으며 지지를 받았다. 어쩌면 소수에게 점유되었던 문학이라는 특권이 에르노에 의해 좀 더 보편적인 가치를 획득하고, 그들의 언어가 아닌 나의 언어, 집단의 언어를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기억의 뿌리와 소외, 집단적인 구속을 드러낸 용기와 꾸밈없는 날카로움”이라는 평을 들으며 202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 또한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비록 문학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내게는 문학적 가치를 지닌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셸 푸코나 부르디외의 텍스트들이 그렇죠. 나는 강렬한 감동을 주는 것이 바로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새로운 것을 향해 열리고 확장되는 듯한 진한 감동 말입니다.”(p.164) 계급과 젠더에 대한 에르노의 자전적 글쓰기는 소설의 경계를 허물고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 글쓰기에 대한 책이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제목이라 아니 에르노가 생소한 독자라면 그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아니 에르노의 저서를 접한 독자라면 무엇이 이 작가를 이렇게까지 밀어붙이고 있는지 궁금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책이 바로 그 답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