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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타래 May 17. 2020

약점을 극복하는 방법은 받아들임이다.

받아들임의 역설

넌 책임을 지는 걸 꺼려하는 거 같다


옆자리 형이 어느 회식 때 나에게 한 말이다. 그 형이 꽤 빨리 입사를 해서 나보다 2살 많지만 벌써 9년 차다. 게다가 이전 부서에서 에이스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일을 잘 한 형이라서 일의 관점에서는 조언이 꽤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비슷하게 봤다. 정확하게는 난 일에 책임을 지는 걸 꺼려하는 게 아니라 틀렸을 때의 불안함과 그 상황을 통제하지 못할 때 느끼는 두려움이 무서운 것이다.


타율이 높다. = 좋은 공만 기다리고 있다.


나는 안전을 택하는 스타일인 듯하다.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최대한 조사하고 알아본다. 원인에 대한 여러 가설을 세우고 하나하나 다 따져보고 확인하고 심지어 유발 테스트까지 진행해서 밝혀진 다음에야 해결책으로 넘어간다. 무턱대고 해결한다고 행동에 들어갔다가 실패하고 다시 돌아오는 게 싫기 때문이다. 그리고 되돌아오는 게 실패라고 느껴지기도 해서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해결책을 제시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확률로 해결이 되니까 타율이 높다고 한다. 사실은 숙고하고 숙고해서 간신히 하나 내놓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다르게 보면 행동까지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원인을 이리저리 생각해보다가 떠오른 해결책들이 진짜 해결책일 경우도 있다. 하지만 빠르게 적용해보고 테스트를 해보면 금방 해결했을 문제를 이리저리 생각해보고 한참 후에 테스트를 시작한다. 그래서 빨리 처리하고 다른 문제에 집중할 시간에 이전 문제를 붙잡고 있다. 


LA 다저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류현진 선수가 한 말 중에 직구와 변화구에 대한 말이 있다. 투수의 공에는 직구보다는 변화구가 더 많을 것이고 직구 중에서도 스트라이크 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서 칠까 말까 고민하는 공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 거르고 내 입맛에 맞는 직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통제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이렇게 집착으로 보일 정도로 성공률에 집중하는 이유는 틀리는 것과 틀렸을 때 그 상황을 통제하지 못할 때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이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이유를 생각해보니 몇몇 실패 경험들이 쌓이면서 실패가 보이는 도전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것 같다. 


대학교 2학년 때 학과 축구 소모임의 장을 맡았다. 빠른 년생이면서 ROTC를 준비해서 2학년에 남아있는 남자 중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떠밀리듯이 하게 되었다. 하지만 ROTC 준비와 동아리 총무 일에 치이면서 교내 축구 토너먼트 대회 준비에서 실수로 일정 공유를 빼먹었다. 그래서 경기 전날 부랴부랴 일정을 알려 선수를 모집했고, 간신히 승부차기로 그 경기를 이기기는 했지만 소모임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원래 성향과 더불어 이 경험으로 인해 확실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도전을 해야 마음이 놓이고 불안함 없이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준비 과정에 과도하게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약점이 생겼다.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고, 그렇지 못할 때 생기는 불확실성이 두려워졌다.



이런 불확실성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아지면 어느 순간 맥이 풀리면서 모든 것을 놓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다. 문제는 내가 놓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도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실제로도 짧지만 일을 다 내팽개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이나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할 수 있거나 길이 보이면 열심히 집중하지만, 길이 보이지 않거나 너무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 우선순위를 뒤로 미뤄버리고 하는 둥 마는 둥 한다. 


조직 차원에서 중요도를 생각하지 않고 나만의 기준으로 판단해 우선순위를 만들었고, 미뤄버려서 조직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꾸중을 듣는 이유의 대부분이고, 주변에서 답답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와주세요


상황을 통제하고 성공률을 높이고 싶지만 능력이 부족한 것만 탓하고 있었다. 하지만 글머리에 쓴 것처럼 옆자리 형의 말을 들은 후부터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꼭 내가 그 상황을 통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도 되고 그 사람한테 부탁을 해도 되는 것이었다. 부탁을 하면서 내 실력이 부족한 것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내 실력을 쌓고 키워가면서 나의 통제력을 확보해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결국은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시작이었다.


요즘에는 조금씩 실패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빈도가 조금 늘어났다. 그렇다고 이제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함을 완전히 해소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예전처럼 불안하고 싫어서 준비를 철저히 하는 편이다. 그래도 조금씩은 불안함을 받아들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면서 일을 하고 있다. 안 될 것 같거나 너무 어려울 것 같은 일은 선배들에게 조언도 많이 구하고 일정 부분은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받아들임을 통해 전체적인 일의 속도가 빨라질 것 같다. 그러면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그만큼 준비 시간이나 노력도 같은 결과를 낼 때 더 적게 들어서 효율성이 높아질 것 같다. 점점 Agile 하게 빠른 시도를 하고 얻은 결과를 피드백하는 과정으로 되고 싶다. 


약간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임으로써 결국에는 준비성이 철저한 것이 큰 장점이 되고 나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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