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계엄령의 망령은 왜 되살아났는가

반복되는 역사 앞에서

by 나그네 한

사진 출처: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170690.html


“피청구인은 국가긴급권을 헌법에서 정한 한계를 벗어나 행사하여 대통령으로서의 권한 행사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문 한 줄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을까. 대통령이 국가긴급권을 헌법의 한계를 넘어서 행사했다는 이 문장은,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를 또박또박 고발한다. 이 판결은 단순한 정치적 패배가 아니다. 이것은 헌정 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고, 민주주의의 뿌리를 뒤흔든 사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위험한 과거를 다시 맞이하게 되었는가? '계엄령'이라는 이름의 망령이, 어쩌다 다시 이 땅을 배회하게 되었는가?


사진 출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1/0002565734


1년 전, 홍준표 대구시장이 했던 말이 있다.


“국민들이 원해 정치력이 없는 이를 대통령으로 뽑았어요!”


부끄럽지만, 이 말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다. 윤석열은 정치력이 없는 권력자였다. 그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숙고와 타협, 설득과 조율의 정치를 요구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된 순간, 그는 자신이 '정치가'가 아닌 '절대자'가 되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그를 왕으로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 허락할 수 없었다.


윤석열은 대화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말을 곧잘 못했고,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사실 정치란, 말로써 정책을 만들어가는 예술이다. 말을 통해 설득하고, 반론을 받아들이며, 다시 논의하고 조율하는 과정 속에서 정책이 태어난다. 하지만 윤석열에게 그런 기본적인 정치의 기초 체력은 없었다. 끝없는 토론과 논쟁 속에서 꽃피워야 할 민주주의는, 그의 언어 밖에 존재했다.


문제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토론의 부재'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는 여전히 토론을 불편해한다.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이 불편한 사회 구조가 있다. 나이와 직분 앞에서 침묵해야 했던 경험들이, 차이를 말하는 것을 두려움으로 만든다. 그러니 사람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를 바엔, 그냥 강한 사람을 원하게 된다. 모든 걸 알아서 정리해줄 절대 권력을 갈망하게 된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독재자라 말하면서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들의 통치를 그리워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혼란을 정리해주는 강한 리더, 무질서를 바로잡는 강한 손. 그 욕망은 민주주의와 언제나 긴장관계에 있다. 윤석열은 그런 권력자가 되고 싶어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나 그는 민주주의와 헌법, 타협과 존중이라는 가치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차라리 그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숙청하고, 침묵시키고, 통제할 수 있는 폐쇄된 권력 구조 속에서 더 편안했을 것이다.


국회와의 대립은 예고된 파국이었다. 그는 국회를 ‘협치의 대상’이 아닌 ‘무시와 배제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것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피청구인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고,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입니다. 이에 관한 정치적 견해의 표명이나 공적 의사결정은 헌법상 보장되는 민주주의와 조화될 수 있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였어야 합니다. 피청구인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하였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국회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민주정치의 전제를 허무는 것으로 민주주의와 조화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회를, 그리고 국민의 다채로운 목소리를 방해물로 여겼다. 결국, 그는 ‘대화’를 포기했고, 그 자리를 ‘계엄’이라는 비상한 수단으로 채우려 했다. 법을 넘어선 권력, 군대를 앞세운 통치, 반대자를 힘으로 눌러 굴복시키는 방식은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의 방식이다.


우리는 지금, 계엄령이라는 단어 앞에 서 있다. 과거라 믿었던 역사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는 단순한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그에게 권력을 허락했고, 그가 정치가 아닌 절대 권력을 꿈꿀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무능을 넘어선,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가 우리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더딘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을 포기할 수는 없다. 설득하고, 반대하고, 또 대화하는 과정 속에서만 우리는 자유를 지킬 수 있다. 계엄령의 망령이 다시 떠오른 오늘,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반복되는 이 역사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그리고, 우리는 같은 질문 앞에서 또 침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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