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헌법은 사람을 편들었다
사진 출처: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75w6rn5kw0o
12월 3일, 뉴스 속 긴급 자막이 화면 아래를 가로질렀다.
"대한민국, 비상계엄 선포."
그 한 줄이 모든 시간을 멈추게 했다.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다. 한국에서, 지금 이 시기에, 계엄이라니. 나는 외국에 살고 있었고,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준 건 미국인 친구였다.
“Jesse, 한국에 무슨 일이야? 전쟁 난 거야?”
“비상계엄이라는데... 무슨 말이야? 지금이 몇 년도인데 계엄을 선포해?”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텔레비전을 향해 달려갔다. 뉴스 화면에는 익숙한, 그러나 너무도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서울 도심, 수많은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있었다.
도열한 군인들, 무장한 경찰들, 그리고 그들 앞에 단단히 선 시민들. 누가 그들에게 총을 겨누라 지시했다면, 아마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날의 광경은 기시감처럼 내게 다가왔다.
1980년, 광주.
나의 고향.
그날 시민들을 향해 겨누어진 총구가, 지금 이 순간 서울의 거리에서 다시 들이밀어질까 두려웠다. 그렇기에 나는 그날, 화면을 떠날 수 없었다.
하지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니, 기적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놀라운 '선택'이었다.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광장은 그들의 발걸음으로 메워졌고, 그들의 외침은 군화 소리보다 더 묵직했다. 무기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국회를 열라고 외쳤다. 그들의 당당함에 어쩌면 군인들도, 경찰들도 마음의 균열이 생겼을지 모른다.
대한민국 최고의 전투부대라는 707부대가 등장했을 때, 나는 숨을 멈췄다. 그들이 마음먹었다면, 그 어떤 저항도 단숨에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천천히’, ‘어쩔 수 없이’
유리창을 깨고 들어갈 뿐이었다.
명령을 수행하는 손끝엔 주저함이 묻어 있었고, 그들의 눈동자엔 사람이 있었다.
그날, 헌법재판소는 결의문에 이런 표현을 남겼다.
“비상계엄이 신속히 해제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덕분이었다.”
‘때문’이 아니라 ‘덕분’이었다.
나는 이 표현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덕분’이라는 말이 주는 위로.
그 자리에 있었던 군인과 경찰들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섬세한 인식.
어쩌면 그들 역시 총을 들고 시민 앞에 선 순간부터 평생의 짐을 지게 된 건 아닐까.
정신교육을 받으며,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군인의 사명이라 배운 사람들. 그날, 그들은 사명과 명령 사이에서 고뇌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사람의 편에 선 이들이 있었다.
그날 광장에 모인 이들은 단지 정권에 반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헌법을 지켰고,
사람을 지켰고,
다시는 광주가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의 흐름을 붙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광장에 서야 했다.
민주주의는 선언이 아니라,
계속해서 ‘지켜내야 하는 것’이라는 진실을,
그날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는 기억한다.
어떤 시대가 사람에게 총을 들이대었는지를.
그리고 우리는 선택한다.
어떤 시대를 살아갈 것인지.
그래서 우리는,
광장으로 다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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