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카이로의 거리에서 마주한 100년의 일상
이슬람 카이로의 어느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의 틈새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과거와 현재가 서로 등을 맞댄 채 나란히 걸으며 서로의 호흡을 맞추는 곳. 어제 찍힌 것 같은 장면들이 오늘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느 날 꺼내 본 백 년 전의 사진 속 거리와 지금 내 눈앞의 풍경이 이상하리만치 겹쳐 보였다. 미나렛은 변한 것이 없었고, 골목의 방향도, 사람들의 동선도 그대로였다.
낮은 건물들 사이로 햇살이 가늘게 스며드는 아침. 골목의 돌바닥에는 수천수만의 발자국이 덧칠되어 있다. 담벼락을 따라 펼쳐진 천과 나무 간판 아래에서, 장인들은 조용히 손을 움직인다. 천 위에 실을 얹고, 실을 따라 침묵을 꿴다. 담배 연기가 천천히 떠오르고, 오래된 라디오에서는 기계음이 섞인 아랍 가요가 흘러나온다. 한 구석에서는 차를 마시는 남자가 천을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하다.
거리 모퉁이에는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앉아 있다. 나무 상자에 담긴 귤과 감, 사과와 포도들이 무게를 다투듯 가득 쌓여 있고, 여인은 손끝으로 껍질을 문지르거나 자리를 조금씩 고쳐 앉는다. 누군가가 다가오면 말없이 값을 말하고, 값보다 과일을 건네는 손이 더 부드럽다. 길을 오가는 이들이 그녀를 지나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여인은 말없이 눈짓으로 대답을 건넨다.
그날 오후, 나는 마스짓의 미나렛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 그 아래에서 들리던 소음은 하나둘 사라졌고, 탑 위에 다다랐을 무렵에는 오직 바람만이 귓가에 닿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도시가 숨을 고르고 있었다. 지붕마다 다르게 접힌 천과 쌓인 벽돌들, 안테나와 위성 접시들, 세월에 마모된 색감들. 도시가 이토록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때, 낮게 울리는 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흘러들어왔다. 아잔이었다. 누구의 말도 아닌데 모두가 듣는 그 소리. 높고 길게 울려 퍼지는 음성이 도시 위에 펼쳐지자, 움직이던 것들이 하나둘 속도를 늦추었다. 걷던 사람들은 걸음을 늦추고, 과일을 정리하던 손은 잠시 멈추었으며, 시장의 소음도 그 순간만큼은 낮아졌다.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 시간이 오고 있음을 알았다. 삶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숨을 고르는 시간. 도시 전체가 그 짧은 멈춤 속에 깊게 잠기고 있었다.
곧바로 나는 성채 위의 마스짓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조용히 발을 씻고, 안으로 들어와 붉은 융단 위에 자리를 잡는다. 손을 들고, 가슴 앞에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몇몇은 외국인 관광객들이고, 또 어떤 이들은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된 노인들이다. 공간은 하나지만, 모두가 다른 이유로 그 안에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어색하지 않았다. 기도는 그들을 나누지 않고, 오히려 이어주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어린아이가 아버지와 나란히 기도 동작을 따라 하고 있었다. 엉덩이를 들고 이마를 바닥에 대는 작은 몸짓, 가끔은 잘못된 동작에도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웃으며 그대로 두었다. 기도는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물려주는 것이란 걸 처음 깨달았다. 아이가 아직 신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몸이 기억할 그 리듬을 아버지는 믿고 있었던 것일지도.
이곳에서 이슬람은 단지 신을 믿는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살아가는 방식이고, 하루의 방향을 정하는 리듬이다. “인샤알라(알라가 원하시면)”라는 말은 기도의 언어가 아니라, 삶을 계획하는 언어다. 친구를 만나도, 물건을 팔아도, 다음 날을 약속해도, 그들은 그 말을 붙인다. 그 짧은 말 안에 불확실한 내일과 동시에 위탁된 믿음이 함께 실려 있다.
기도는 이 도시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그 중심은 거창하거나 장엄하지 않다. 시장의 한 모퉁이, 과일 상자의 그림자 아래, 실을 꿰는 바느질의 틈,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 끝. 그 어디든 기도가 스며들 수 있는 자리가 된다. 삶은 그 위에 펼쳐진 융단이고, 발을 들이딛는 그 자리가 곧 예배당이다.
변하지 않는 미나렛을 올려다보며 나는 생각한다. 그 탑은 오늘도 같은 문장으로 도시를 깨운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 응답하는 사람들의 삶이, 하루가, 얼굴이 다르기에, 같은 소리도 매번 새롭게 들린다.
이 도시는 매일 기도한다. 소리로, 손으로, 기다림으로, 그리고 멈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