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콥틱 교회에서 본 박해와 존경, 그리고 예배의 심장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십자가는 위아래, 좌우로 뻗은 두 선의 단순한 구조다. 하지만 콥틱 기독교의 오래된 십자가 문양은 그 형태부터 다르다. 중심에는 짙은 원 하나가 박혀 있고, 그 원을 중심으로 교차된 선들이 연결되어 있다. 마치 교차점에서 무엇인가가 자라나는 듯한 형상. 그 원은 ‘교회’를 상징하고, 네 방향으로 뻗은 선들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세상을 교회 안으로 불러들이고, 교회는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영성. 그것이 곧 콥틱 신앙의 본질이자 오랜 세월 이어진 기도의 구조다.
콥틱 십자가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성당의 창살 위에도, 벽면의 자그마한 장식 안에도 이 문양은 숨 쉬고 있다. 마치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사람처럼, 교회는 세상을 받아들이고, 다시 세상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반복한다. 그 오랜 리듬 속에서, 이집트의 기독교는 황야 같은 시간을 지나 오늘까지 이어져 왔다.
이집트 기독교의 시작은 한 복음서의 이름에서 비롯된다. ‘마가복음’—신약성경의 두 번째 책, 간결하고도 역동적인 서술로 가득 찬 이 복음서의 저자로 알려진 ‘마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단지 기록자에 머물지 않았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마가는 예루살렘에서 출발해 북아프리카의 항구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다. 당시 이 도시는 학문과 철학의 중심지였고, 그리스와 이집트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마가는 그곳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의 전도는 단숨에 거대한 물결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조용한 씨앗은 뿌려졌고, 땅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점차 알렉산드리아에는 소규모 공동체가 생겨났고, 이들은 모임과 기도를 통해 새로운 신앙을 형성해 나갔다. 마가는 단순히 한 도시의 방문자가 아니라, 한 문명의 지형을 바꿔놓은 인물이 되었다. 그런 까닭에 이집트의 콥틱 기독교는 그를 ‘초대 교황’이라 부른다. 이는 단지 명예로운 칭호를 넘어서, 교회의 출발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상기시키는 깊은 상징이다.
알렉산드리아 곳곳에는 지금도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성 마가 교회’라 불리는 대성당이 그를 기리며 세워졌고, 해마다 그의 순교일이 되면 수많은 신도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며 예배를 드린다. 시간은 지나도, 그 기억은 퇴색되지 않았다. 약 2천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수많은 콥틱 신자들의 믿음 속에 살아 숨 쉰다. 그 이름은 단지 한 사람의 역사이기 이전에, 이집트 기독교의 뿌리가 되었고, ‘시작’이라는 단어 자체가 되었다.
그러나 그 시작은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었다. 기독교가 처음 뿌리내렸을 때의 알렉산드리아는 다신교와 철학, 로마 제국의 권력이 뒤얽힌 복잡한 공간이었다. 초기 신자들은 조용히 모여 예배를 드렸고, 때로는 가정의 뒤편 방에서, 때로는 시장 한편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조용한 모임은 황제의 귀에까지 닿았다.
3세기에서 4세기에 이르러,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위협으로 간주했다. 황제는 더 이상 정치적 권위만으로는 백성의 충성을 유지할 수 없다고 느꼈고, 신앙을 이용해 제국의 통합을 꾀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황제 자신을 신격화하는 명령이 내려졌다. 누구든 황제를 신으로 인정하고 향을 피우며 절하라는 지시. 그것은 정치적 의례처럼 보였지만,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곧 ‘양심을 꺾는 일’이었다.
그 명령 앞에서 많은 이들은 고개를 숙였다. 생존을 택한 이도 있었고, 침묵 속에 믿음을 감춘 이도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가족을 지키고,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대신 깊은 고통을 선택했다. 도망쳤고, 지하로 숨었고, 고문당했고,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신앙은 선택이 아닌 ‘존재의 핵심’이었기에.
누군가는 묻는다. 단지 말 한마디만 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왜 그렇게까지 했느냐고. 왜 그렇게 지하 30미터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느냐고. 하지만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종교적 교리나 도덕이 아니라, ‘삶을 걸고 지키고 싶은 진심’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진심이 있었기에, 콥틱 기독교는 20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다. 그리고 지금도, 아이의 손목에 새겨지는 조그마한 십자가 문신 속에, 그 불꽃은 여전히 작지만 또렷하게 빛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외곽의 어느 지점, 나는 ‘카타콤’이라 불리는 지하 무덤으로 향했다.
지면 아래로 약 30미터를 내려가는 좁고 어두운 계단. 원래는 2세기 귀족들을 위한 묘소였지만, 세월이 흐르며 이곳은 신앙을 지키기 위한 피난처가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이곳에서 가족을 묻고, 함께 거주하며, 때로는 예배를 드렸다. 바위로 된 차가운 방, 환기조차 쉽지 않은 폐쇄된 공간 속에서 그들은 숨죽이며 버텼다. 어떤 이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눈을 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신앙을 바꾸는 대신, 삶의 터전을 바꿨다. 이들이 버틴 것은 두려움을 몰라서가 아니라, 어떤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확신은 바로 ‘십자가’였다.
콥틱 기독교는 지금도 그 십자가를 몸에 새긴다. 아이가 태어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 부모는 아이를 안고 조용히 교회로 향한다. 그리고 한 사제 앞에 선다. 예배의 후반부나 별도의 의식 속에서, 아이의 오른쪽 손목에 아주 작고 단단한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다. 바늘과 먹으로 새기는, 말하자면 문신이다. 이것은 일종의 전통이자 의무이며 동시에 축복이다.
하지만 이 작은 문신은 단순한 장식도, 예식의 기념품도 아니다. 그것은 곧 ‘정체성’이자 ‘고백’이다. 이 아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믿고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첫 번째 표식. 누군가는 이 표식을 통해 환대받고, 또 누군가는 차별과 감시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의 콥틱 부모들은 오늘도 이 조용한 ‘새김’을 선택한다.
십자가는 그들의 역사 속에서 단순한 종교의 상징이 아니라, 고난과 생존, 정체성과 저항의 언어였다. 로마의 핍박 속에서도, 이슬람 정권 아래서도, 현대의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도 이 십자가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아이의 몸에 새겨진 이 작은 문양은, 한 가정의 믿음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것은 교육이나 말로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피부에 직접 새겨지는 살아 있는 기억이기도 하다.
이 십자가는 때때로 침묵한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말보다 더 강하게 존재를 드러낸다. 누군가의 시선이 그 문신 위에 머무를 때,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 반응할 때, 그때야 비로소 그것은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 ‘나는 믿는다.’ 그 고백은 과거의 것도, 단순한 형식의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는 삶의 자세다.
어쩌면 그 십자가는 한 사람의 이력서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지문일지도 모른다. 국적이나 언어, 교육 수준과 무관하게, 누군가의 마음속에 새겨진 가장 근원적인 선언. 그것이 바로, 콥틱의 아이들이 손목에 지니고 살아가는 의미다. 아이는 아직 그 뜻을 다 알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신이 주는 무게는, 세월 속에서 천천히 몸과 마음에 스며든다. 그리고 언젠가,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삶의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묻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왜, 이 문양을 지니고 살아가는가?”
그 질문이 시작되는 곳에서, 진짜 신앙은 자라난다.
콥틱 예배를 직접 본 적 있는가? 서양 교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흰 수의를 입은 사제가 향을 들고 회중 사이를 거닐고, 사람들은 조용히 손을 모아 사제의 기도에 귀 기울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이 사제의 관 앞에 서서 기도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교황들, 성직자들의 관이 교회 한편에 놓여 있고, 사람들은 그 관에 손을 대고 입을 맞춘다. 나는 묻는다. 그 기도는 과거의 사제를 통해 신에게 닿는다고 믿는 걸까? 아니면, 그들과 함께 기도함으로 하느님과 가까워진다고 느끼는 걸까?
그 대답을 난 몰라도 좋다. 다만, 그 기도의 자세 안에서 느껴지는 진지함, 간절함, 그리고 경건함은 부인할 수 없다.
예배의 절정은 ‘성찬’이다.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이 의식은, 교회의 중심이자 콥틱 신앙의 심장이다. 사제는 성찬을 통해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사제는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라, 영적인 문을 여는 존재다. 그만큼 이집트 콥틱 교회의 사제들은 깊은 존경을 받는다. 이들 중에는 무슬림들로부터도 존경을 받는 인물이 있을 정도다.
놀랍지 않은가? 인구의 90%가 이슬람 신자인 이 나라에서, 기독교 사제가 존경받는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그것은 콥틱 교회의 십자가가 단지 경계나 배타의 상징이 아니라, ‘세상을 품는 신앙’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증거일지 모른다.
그렇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존재한다. 콥틱 십자가의 모양이 그것을 말해준다. 중심은 교회지만, 그 선은 언제나 밖을 향해 나아간다. 세상은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교회는 다시 세상을 향해 나간다. 그 움직임 안에서, 교회는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신앙을 지켜내며, 또 누군가에게 그 신앙을 전한다.
콥틱 기독교는 어쩌면, 잊힌 그리스도교의 원형일지도 모른다. 박해 속에서 굴하지 않았고, 다수를 향해 배타하지 않았으며, 조용하지만 꿋꿋이 한 방향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그들의 예배, 그들의 기도, 그들의 십자가. 그 모든 것 안에서 우리는 ‘신앙’이라는 단어의 깊이를 다시 묻게 된다.
십자가는 세상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을 품고,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그 안에 담긴 깊은 숨결이, 오늘 우리에게도 작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