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그날도 예수는 성전 가까이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성전 뜰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매일같이 모여드는 이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는 병든 사람, 잊힌 사람, 귀 기울이는 자들, 어제와 오늘이 다른 자들도 있었겠지만, 예수가 거기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 장면을 여러 사람에게서 들었다. 아주 조용히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마치 자기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흥분한 얼굴로 전하는 이도 있었다. 어떤 이는 물을 긷던 동작을 멈추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날도 그는 거기에 있었소. 아무렇지 않게, 늘 그러하듯이 말이지요. 이야기를 시작하면, 사람들은 그늘로 몰려들었소. 눈빛이 모였고, 손이 멈췄고, 바람도 약간은 조용해졌던 것 같았소.”
나는 되묻지 않았다. 그의 말 끝에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떨림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날 예수를 향해 다가간 이들은, 그 떨림을 잊은 사람들 같았다. 그 무리들 가운데는 수석 사제들과 율법을 연구하던 이들, 그리고 민중의 어른으로 불리던 원로들이 함께 있었다. 보통 이들은 자기들끼리 따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를 불편해하거나, 누가 먼저냐를 따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그들은 함께 걸어 들어왔다고 했다. 오래전 출애굽 시절 이집트의 사막을 지나던 사람들처럼, 조용히 그러나 명확히 걸음을 맞추며 예수에게 다가갔다고...
그들이 예수를 향해 건넨 말은 짧았다.
하지만 묻는 이도, 듣는 이도, 말의 무게를 모를 수 없었다.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해보시오. 또, 그런 권한을 당신에게 준 사람이 누구요?”
이 말을 전한 이는 고개를 약간 떨구고 속삭이듯 말했다.
“그건 단지 무슨 허락을 받았느냐는 말이 아니었소. 그건 함정이었지요.”
나는 그 말의 의도를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이 말한 '이런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그렇다.
예수가 며칠 전 성전 뜰에 있던 상인들을 내쫓았다는 이야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를 팔던 자들의 자리를 뒤엎고, 그들에게 외쳤다는 이야기...
그것은 단순한 분노의 행위가 아니었다. 성전을 장터처럼 만든 그 풍경에 대해 예수는 거침없이 반응했다. 그리고 그 반응은 그동안 누구도 감히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누군가는 속으로만 불편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오히려 후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사제들과 율법학자, 원로들에겐 달랐다. 그것은 체계에 대한 도전이었고, 권위에 대한 공격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왔다.
예수의 말을 듣기 위함이 아니라, 그를 걸기 위해서였다.
“당신은 누구의 권한으로 이런 짓을 하오?”라는 질문은 마치 두 갈래 칼처럼 날카로웠다. 그가 “하느님께서”라고 답한다면, 신성모독으로 몰아세울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고 “아무도 아니다”라 말한다면, 근거 없이 행동한 자로 몰아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들고, 오히려 다른 질문을 내놓았다.
“나도 하나 물을 테니 대답해 보라. 요한의 세례는 하늘에서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그 말에 공기가 잠시 멈췄다고 했다. 다소 덥고 탁한 오후의 공기였지만, 순간적으로 그 무리 가운데 흐르던 공기 전체가 얼어붙는 듯했다고... 사람들은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제들의 눈동자는 흔들렸고, 율법학자의 입술은 무언가를 곱씹는 듯했으며, 원로들은 시선을 피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속삭이며 서로 의논했다.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왜 그를 믿지 않았냐고 할 것이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면, 사람들에게 돌팔매를 맞을 거요. 그들은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으니까.”
나는 그들이 예수를 시험하려 했다가, 오히려 자신들이 그 안에 갇혀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사람을 잡기 위해 그물을 던졌지만, 그물은 바람을 타고 거꾸로 그들을 감쌌다. 답할 수 없었고, 아니, 그 누구도 그 자리에서 ‘정답’을 말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르겠다.”
예수는 그 대답에 담담히 이렇게 응답했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겠다.”
말을 아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무슨 권한으로 행했는지를 몰라서도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질문할 자격을 잃었다. 그들의 질문에는 진실을 향한 갈증이 없었고, 진리를 받아들이려는 겸손이 없었다. 그러니 그들은 대답을 들을 수도 없었다.
어떤 이는 이 장면을 이렇게 말했다.
“그날, 예수는 말로 승부한 게 아니었소. 침묵이었지. 말하지 않음으로, 말보다 더 큰 것을 보여주었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엔 어떤 파문이 남았다. 예수는 왜 그런 방식으로 대답했을까... 왜 그는 질문으로 질문을 받았을까... 왜 그 대답은 멈춘 채, 사람들의 마음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을까...
오래전 들은 누군가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는 누가 물어도, 다 말해주진 않았소. 말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으니까.”
그날, 그는 그들의 질문을 듣고도, 그 질문 너머의 의도를 보았던 것이다. 그가 본 것은 말이 아니라, 말의 속에 감춰진 칼끝이었고, 그 칼을 뽑아 든 자들의 손떨림이었고, 그들 안에 있던 빈자리를 아는 눈이었다.
논쟁이 잠잠해진 듯 보였던 성전 뜰의 공기는, 사실 어느 때보다도 무거웠다. 그들은 예수를 궁지에 몰아넣으려 했다가 도리어 말을 잃었고, 예수는 그 틈을 비집고, 백성을 향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는, 비유였다. 직설이 아닌 우회였고, 돌을 들기보단 거울을 들이대는 방식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 했고, 누군가는 도망치려 했으며, 누군가는 그 안에서 누군가를 지목하려 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고, 그걸 소작인들에게 내주었지. 그리고는 오랫동안, 멀리 떠나 있었어.”
그 말을 듣던 이들은 이미 마음속에서 장면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땅은 포도밭이 많았다. 햇살과 물과 돌, 그 모든 것이 포도를 위해 존재하는 듯한 땅에서 살아온 이들이기에, 그 비유는 낯설지 않았다.
“포도 철이 되었고, 주인은 소출을 받기 위해 종 하나를 보냈지. 하지만 소작인들은 그를 매질했고, 빈손으로 돌려보냈어.”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 이야기는 점점 날을 세우고 있었다.
“주인은 또 다른 종을 보냈어. 하지만 그 종도 매질당하고, 모욕을 당했지. 결국 또 빈손으로 돌아왔어. 그리고 세 번째 종을 보냈는데, 그 역시 상처를 입고 내쫓겼어.”
사람들 사이에 속삭임이 흘렀다. 포도밭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 분명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점점 현실을 닮아갔고, 과거를 건드렸고,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 종들이 누구였는지를...
“주인은 이렇게 말했지. ‘어떻게 해야 하지? 사랑하는 내 아들을 보내자. 내 아들이라면, 그들은 존중해 주겠지.’”
여기서부터는, 숨소리도 조용해졌다. 이야기 속의 ‘아들’은 특별했다. 그저 또 하나의 종이 아니었다. 그는 주인의 사랑을 받는 존재였고, 마지막 기대이자, 최종의 희망이었다.
"하지만 소작인들은 그 아들을 보자 말했지. ‘저 자는 상속자다. 죽여버리자. 그러면 이 포도밭은 우리 것이 될 거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포도밭 밖으로 끌고 나가, 죽여버렸어.”
사람들의 눈이 흔들렸다.
누군가는 손끝을 움켜쥐었고, 누군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예수는 물었다.
“그러면, 그 포도밭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말을 듣던 이들 가운데서 갑자기 터져 나온 목소리가 있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단호하면서도 두려운 목소리였다. 마치 그 일이 이미 벌어진 일이 아니라, 지금 막 시작되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혹은 그 일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자 예수는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기록된 말은 무슨 뜻이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그 말은 오래된 시편에서 왔다. 사람들이 수없이 노래하고, 외웠던 그 구절... 하지만 그 말이 지금 여기에, 이 자리에 다시 인용되었을 때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예수는 이어서 말했다.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누구든지 부서지고, 그 돌에 맞는 자는 누구든지 으스러질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율법학자들과 수석 사제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의 눈빛은 더 이상 논쟁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분노가 치밀었고, 그 비유 속의 ‘소작인’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죽인 아들’이 누구를 뜻하는지를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당장 예수를 붙잡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의 손은 움직이지 못했다. 그 자리에 모인 백성들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예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어떤 이는 눈에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들의 눈에 비친 예수가, 이야기 속의 ‘아들’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이 그동안 믿어왔던 것들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에게 물었다.
“그날 그 자리에 있었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하지만 거기에 있었던 누군가의 말을 들었소. 그날 이후로, 그는 매일 그 비유를 떠올렸다고 했지. 자기가 그 이야기 속의 누군가였던 것 같다고… 그렇게 말했소.”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이야기는 끝났고,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날 예수가 들려준 이야기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백성들 앞에 놓인 거울이었고, 지도자들의 가슴에 던져진 징표였고, 오래전부터 예비된 하나의 선언이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그 아들을 죽인 건 누구였을까...
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떨군 자는 누구였을까...
그리고 끝까지 그를 바라보았던 눈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이야기는 끝난 줄 알았던 그날, 성전 뜰의 긴장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그들이 내세운 사람들...
겉으로는 선한 얼굴이었고, 정중한 말투였지만, 그들이 준비해 온 질문에는 칼끝 같은 의도가 숨어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직접 본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을 통해 들었다. 그날 예수 앞에 선 이들은, 첩자였다. 백성들에게는 선량한 얼굴로 다가왔지만, 그들의 눈은 예수의 말 한마디를 벼리고 있었고, 그 한 마디로 그를 총독에게 넘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예수가 스스로 무너질 말을 하기를 기다리며, 그들은 이렇게 입을 열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올바르게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가리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신다는 것을 압니다.”
칭찬처럼 들렸다.
누가 들으면, 예수를 존경하는 이들이라 착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설명’이 아니었다. 그 말에는 ‘가면’이 있었다.
그들은 이내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저희가 황제에게 조세를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그 질문에 사람들이 멈췄다고 했다. 침묵이 흘렀고, 일부는 숨을 죽였다. 그것은 단순한 세금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조국은 주권을 잃었고, 민중은 지배국에 세금을 바쳤다. ‘세금을 낸다’는 것은 로마의 통치를 인정하는 것이었고, ‘내지 않는다’는 것은 곧 체제를 부정하는 선동이 되었다.
예수가 세금을 내라고 말하면 그는 민족의 배신자가 되었고,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그는 로마의 적이 되었다. 그 질문은 외줄이었다. 어느 쪽으로 대답해도, 그는 떨어질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의 속셈을 꿰뚫어 보았다. 그가 한 말은 단순한 반문이 아니었다.
“데나리온 한 닢을 나에게 보여라. 누구의 초상과 글자가 새겨져 있느냐?”
사람들은 데나리온을 꺼냈고, 그 동전 위에 새겨진 황제의 얼굴과 글자를 가리켰다.
“황제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는 조용히 말한다.
“그러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백성들 앞에서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던 자들은, 오히려 그 한 마디에 할 말을 잃었다. 사람들은 그 답변에 경탄했고, 그들을 대신해 나도 오래도록 그 말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황제의 것.
하느님의 것.
동전 하나 위에 새겨진 얼굴 하나와, 사람의 내면에 새겨진 존귀함의 차이... 그는 그것을, 그렇게 한 문장으로 갈라내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그날, 무너지지 않았소. 그의 말은 칼을 쥐고 온 자들의 칼을 거두게 만들었고, 그날 이후로,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소.”
나는 이 세 장면을 통해, 한 가지를 계속 되뇌게 되었다. 그가 누구의 권한으로 그런 일을 했는가... 그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던 자들은 누구였는가... 그리고 지금, 나는 무엇을 누구에게 돌려드리고 있는가...
어떤 날은, 예수의 말이 침묵보다 더 조용하게 가슴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그는 소리치지 않았고, 무언가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는 ‘권한’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지만, 그의 말과 침묵 속에는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는 어떤 진실이 있었다.
그날 성전 뜰에 모인 사람들처럼, 우리도 질문을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누구에게 돌려드려야 하는가. 그는 황제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나누었고, 나는 그 말 앞에 오래도록 서 있게 된다.
그의 말은 시대의 중심에서 균형을 잃지 않았고, 그를 향한 함정 속에서도 고요한 울림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 울림을 따라 또 하루를 살아간다.
무엇이 진짜 나의 것이고,
무엇을 돌려드려야 하는지를 되새기며...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20:1-26"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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