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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그네 한 May 08. 2022

'스스로 있는 자'란?(1) - 모든 것의 처음

천지 창조(天地創造)가 성경의 첫 구절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집트의 사막 - 카이로 와디 디글라

모세는 히브리인들에게 '스스로 있는 자'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다신교 신앙을 갖고 있던 히브리인들을 유일신 신앙으로 바꾸기 위해 과거 이집트의 파라오 '아케나톤(Akhenaten)'의 '아톤(Aton- 태양신)' 이야기를 통해 이해시키려 했다. 하지만,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오랜 관습, 신앙 그리고 세계관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그들은 전과 같이 황소의 형상 '아피스(Apis)'를 자신들을 구원해 낸 '스스로 있는 자'로 여기며 황금으로 모양을 만들어 그 앞에서 제사하며 춤을 추었다. 이들에겐 아직 유일신을 이해할만한 지성과 형상화되지 않은 신을 따를만한 신앙과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이어온 그들의 종교적 세계관과 관습을 버리기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시내산 아래의 '황금송아지'를 사건을 두고 그들의 믿음 없음을 무조건 탓할 수 없다. 나, 아니 우리라도 그들과 같은 선택과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당신은 오랫동안 지켜온 관습과 신앙을 한 번에 버릴 수 있는가?


1. '스스로 있는 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한 유일한 신이다.


너희들이 믿는 모든 신의 처음이다.


모세는 이제 '스스로 있는 자'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그 신은 누구인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다. 아톤 신과 같은 창조자가 아닌 너희가 이집트에서 섬겼던 모든 신들의 원형을 만든 이다. '스스로 있는 자'는 태양, 달, 공기, 바람, 모든 식물과 동물, 사람의 창조자다. 그렇기에 그는 형상이 있을 수 없다. 어떠한 모양이든 그의 창조로부터 시작된 것이기에 어떠한 형상으로 '스스로 있는 자'를 만들고 표현하는 것은 그에겐 아주 모독적인 것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함부로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처음 그리고 탄생이 있는 것처럼 우리, 모세의 첫 청중인 '히브리인들'에게도 처음이 있다. 그 처음은 '스스로 있는 자'로부터 시작되었다. 세상의 가장 근원이며 먼저가 되는 신이 '히브리인들'의 구원자다. '스스로 있는 자'는 히브리인들을 그의 '강한 팔'과 그의 '그늘 날개 아래'로 보호하며 이집트에서 탈출시켰으며 지금 이곳 광야에서도 함께 하고 있다.


 

이집트 '네크베트(Nekhbet)'신 - 사랑과 미의 여신 그리고 보호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죽으면 '라(Ra)'의 딸 '네크베트‘가 그늘 아래처럼 죽은 파라오를 보호한다 믿었다. 그래서 이집트 신전 곳곳에 그녀의 그림과 편 날개들이 그려져 있다. '그의 그늘 아래', '그의 강한 팔'은 오직 파라오에게만 적용된 표현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있는 자'는 파라오에게 적용된 표현을 '히브리인들'에게 적용시킨다. 그리고 '스스로 있는 자'의 날개와 팔은 '하토르'의 날개와 팔보다 강하다. 또한, '하토르'는 죽은 이 즉 오직 죽은 파라오만을 보호하지만 '스스로 있는 자'의 날개는 살아 있는 '히브리인들'을 보호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이기에 죽은 자의 신보다 훨씬 강하다.


온 세상의 '처음'된 이가 우리의 구원자라고...?


모세의 말을 들은 히브리인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단순히 '히브리인'이라 불리었던 이름 없는 민족, 노예, 이집트의 신들 조차 감당하기 힘들어 감히 쳐다보지 못했던 이들. 하지만, 그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한 이는 세상의 '처음' 된 자, 일명 '스스로 있는 자'이다. 이방인 뜻을 가졌던 '히브리인들'은 이젠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이스라엘'의 뜻은 "스스로 있는 자와 더불어 힘을 얻어 강하게 된 자, 스스로 있는 자가 통치한다"의 뜻을 가진다. 노예였던 히브리인들은 이스라엘이 되어 '스스로 있는 자'의 힘을 얻어 강한 민족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불과 몇 개월 전에 일어났고 그들 모두가 직접 경험한 사실이다. 그들은 '스스로 있는 자'의 힘으로 인해 이집트의 신들을 무너뜨렸고 파라오를 굴복시켰다. 파라오가 누구인가? 이집트의 태양신 '라(Ra)'의 대리자이며 절대 권력을 가진 이였다. 히브리인들(이스라엘)은 그 파라오와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신들을 굴복시켰다.


그들은 이집트의 천한 노예에서 세상의 처음인 '스스로 있는 자'와 함께 한 고귀한 이들로 신분이 바뀐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있는 자'의 대리자가 될 것이다. 파라오가 이집트 신들의 대리자가 된 것처럼 '히브리인들(이스라엘)'은 세상의 처음인 '스스로 있는 자'의 대리자가 되어야 한다. 모세의 이야기를 들은 히브리인들의 놀람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실을 모세로부터 듣게 된다. 그들의 정체성은 혼란에 빠지게 되며 그 사실을 받이들이기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정체성 혼란은 아주 오랫동안 그들의 삶을 괴롭히게 된다. 강담할 수 없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들의 삶은 늘 자신들을 낙심하게 하며 단순했던 이집트 노에의 삶을 그리워하게 한다. 훗날 그들의 후손들 그리고 '스스로 있는 자'를 믿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이집트 탈출을 '은혜'로 해석하고 표현하지만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스스로 있는 자'에게 받은 새로운 정체성은 '은혜'가 아닌 '족쇄'였다.


천한 노예였던 우리가 세상의 처음인 '스스로 있는 자'의 대리자가 된다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감당을 하라는 것이지? 이게 말이 되는가? 우린 모세처럼 더욱이 파라오 그리고 그들의 제사장들처럼 그만한 지성, 학문 그리고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야. 우린 400년 이상을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밥을 주면 먹고 일하라고 하면 일하고 쉬라면 쉬며 아주 단순한 삶만을 살았던 사람들이야. 우린 모세가 우리에게 말한 사실과 명령을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야.




2. 성경의 편집자가 '천지창조(天地創造)'를 성경의 첫 장으로 만든 이유


처음의 창조자 '스스로 있는 자'의 이야기. 그리고 그가 '히브리인들(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켰다는 사실 '히브리인들(이스라엘)'에겐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들의 정체성은 '스스로 있는 자'의 '처음 창조'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스스로 있는 자'는 '히브라인들(이스라엘)'을 통한 예배(제사)를 받아야 했으며 또한 그들을 자신의 대리자로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앞서 계속 반복해서 말하지만 '히브리인들(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스스로 있는 자'가 자신들의 시초가 된다는 사실은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시초를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소개했다면 그들은 모세의 말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조상들 역시 '스스로 있는 자'의 날래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앞으로 그들의 시초를 자신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부터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있는 자'로부터 찾아야 한다. 그래서 모세에게 있어서 '히브라인들(이스라엘)'에게 가장 중요하고 잊지 말아야 하며 가장 처음으로 말한 '스스로 있는 자'에 대한 사실은 세상의 '처음'이며 '창조자'자라는 사실이다.


훗 날 시간이 지나 성경이 편집되던 시기에...


이 모세의 가르침은 훗날 성경을 편집했던 사람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들 역시 '히브리인들(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에 대한 지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성경을 통해 한 민족에 대한 역사와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하는 이들 가운데 그들의 시초를 정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한국 역사의 시초를 '단군'이라는 신화에서 시작했던 것처럼 '히브리인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편집하는 사람들 역시 그와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히브리인들(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다른 아시아의 국가들과는 달랐다. 그들의 역사는 이집트 신화, 메소포타미아 신화, 아시아의 신화, 단군신화 등 처럼 인간의 관습과 종교적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 아닌 '실제'였으며 어느 한 '인간'으로 시작된 역사가 아니었다. 그들의 역사는 '스스로 있는 자'의 역사이다. 성경을 기술하고 편집했던 많은 사람들은 '히브리인들(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닌 '스스로 있는 자'와 함께 있는 그들의 역사를 기술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이스라엘)'이 주인공이 아니라 '스스로 있는 자'가 성경의 주인공이 되기에 성경의 첫 문장은 '스스로 있는 자'의 천지 창조를 배치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칭호는 히브리인들부터 시작했지만 언제든 그 칭호의 대상은 바뀔 수 있다. '스스로 있는 자'의 역사를 알리는 대리자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이스라엘'의 칭호를 얻을 수 없으며 빼앗기게 된다. 과연 '히브리인들'은 '이스라엘'의 칭호를 지켜낼 것인가? 아니면 이집트의 노예 '히브리인'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건 그들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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