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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그네 한 Jul 01. 2022

'죽음'이 아닌 '삶'을 생각하게 하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작품 '레퀴엠'을 듣고 난...

모짜르트의 친필 레퀴엠 악보 - 출처: 나무 위키

작품 명: The Requiem Mass in D minor (K. 626) by Wolfgang Amadeus Mozart


약 10년 전, 어느  돌잔치. 지인들과 둘러앉아 식사를 하던 중 스피커를 통해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에겐 아주 익숙한 곡이었다.


Kyrie eleison,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Christe eleison,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Kyrie eleison.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모차르트의 마지막 작품 '레퀴엠'.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 음악'이었다. 나에겐 아주 익숙하고 반가운 음악이었지만 식사를 멈추고 자리에 일어나 급히 돌잔치 진행자에게 가서 바로 말을 하였다.


"선생님. 음악 바꿔주세요. 지금 흘러나오는 음악은 '레퀴엠'이라고 죽은 자를 위로하기 위한 음악이에요. 돌잔치에 틀기엔 너무 어울리지 않은 음악이에요"


나의 말을 들은 식장 관계자는 너무 놀란 나머지 급히 그 음악을 끄고 다른 음악으로 바꾸었다. 알고 보니 그 장소에서 돌잔치를 할 때마다 늘 틀었던 음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내가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 그 음악이 어떠한 음악인지 말하지 않았건 것이다. 생각해보면 누구든 아이를 축하하는 분주한 자리에 그런 것까지 생각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공부, 입시, 앞으로의 꿈으로 인해 많은 고민이 있던 때가 있었다. 학교, 가정, 교회 그리고 세상에 대한 반항이 있던 때이다. 난 당시 주로 듣던 음악이 '헤비메탈'이었다. 파괴적이고 저돌적이며 나름의 철학적 메시지가 있는 음악을 좋아했다. 아침 등교시간 그리고 밤 하교 시간 전철 안에서 헤비메탈 카세트가 들어있는 '워크맨'을 귀에 크게 틀어 놓고 다녔다. 그 음악들을 들으며 세상을 비관하고 나의 삶을 미워했다. 그래서 난 자주 '죽음'을 생각했고 그 두려움에 밤에 불을 끄고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마도 나와 같은 많은 청소년들이 그렇지 않았을까.


우연히 보게 된 영화가 있다. '아마데우스'. 세 시간이 넘는 이 영화 그리고 흘러나오는 모차르트의 클래식 음악들. 락, 헤비메탈과는 전혀 다른 음악이었지만 전혀 지루 할 틈 없이 영화를 집중하며 보았다. 그리고 영화 '아마데우스'의 마지막 장면. 모차르트가 설명을 하면 그의 친구(?) 살리에리가 음악을 오선지에 받아 적는 모습. 난 그때 흘러나오는 그 음악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Dies irae, dies illa 진노의 날, 그날
solvet saeclum in favilla,
[인간] 세대를 티끌로 부숴 버리리라,
teste David cum Sibylla. 시뷜라와 함께 하던 증인 다윗[의 증언]에 따라.
영화 아마데우스 - 네이버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시기하던 살리에리. 모차르트의 설명을 들으며 악보에 적어 넣는 그의 모습은 신 앞에 서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마지막 모습 가운데 모차르트에 대한 질투, 시기, 미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는 모차르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가장 위대한 작곡가입니다"


내가 느끼기엔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마지막 곡을 받아 적으며 지옥 같았던 자신의 삶에서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듯 보였다. '신(神)'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곡을 들려주며 그에게 '죽음'에서 '삶'으로 인도하고 있는 듯했다.




나 역시 죽음이 아닌 삶을 생각하다.


영화를 본 후, 난 바로 래코드 점을 찾았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레퀴엠' 테이프를 샀다. 그 후 수 계월 동안

난 헤비메탈이 아닌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들었다. 테이프가 늘어나자 난 바로 CD를 구입했다. 모차르트의 그 음악을 들으며 죽음을 생각하고 두려웠던 난 삶과 위로, 감동, 희망을 생각하게 했다. 죽은 자를 위한 곡이 어느 한 청소년에게 위로와 감동을 준 것이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  그때를 회상하며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듣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음악의 감동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곡은 나에겐 가장 감동을 주는 곡이다.  죽은 자를 위한 곡이 산자에겐 위로이며  세상을 살아갈 이유와 고민을   있게   것이다.


Sanctus, sanctus, sanctus Dominus Deus sabaoth!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누리의 주 하느님!
Pleni sunt coeli et terra gloria tua.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그 영광
Hosanna in excelsis. 높은 데에서 호산나.
Benedictus, qui venit in nomine Domini.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Hosanna in excelsis. 높은 데에서 호산나.


https://youtu.be/MBUbGh9Ei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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