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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광 May 07. 2020

아버지의 응원으로 시작한 30대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지난 4월 나는 20대 후반을 함께 했던 직장을 그만뒀다. 이직할 곳을 정해뒀거나, 앞으로 계획이 뚜렷하게 있는 건 아니었다. 사람에 치이며 받은 스트레스가 병을 키웠다. 더 이상 계속했다간 정신뿐 아니라 몸까지 상할 것 같아 내린 결론이었다.


자신 있게 내린 결정과는 달리 불안함이 엄습했다. 올해로 서른. 친구들은 저마다 길을 찾아 나아가고 있는데, 나는 커리어에 제동을 걸게 됐다. 앞으로는 뭘 해야 할까. 지금 삶보다 나은 것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만둔 걸 후회하면서 살게 되진 않을까.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헤집었다.


잠시나마 고민에서 떠나고자 무작정 본가로 향했다. 그만뒀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님께선 평소처럼 반응했다. 


“네가 내린 결정이니 알아서 하겠지.”


내가 바라던 반응이었다.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도, 대학 원서를 제출할 때도 부모님은 늘 ‘알아서 해라’라고 했다.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 선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가끔은 따스한 충고를 해주길 바라기도 했지만, 결국 그런 교육방식 덕분에 난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다.


서울을 떠나 본가에서 보낸 일주일은 더없이 즐거웠다. ‘이제 뭘 해야 할까’하는 머리 아픈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쉬는 것에 집중했다. 그 기간 동안 부모님은 내게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부모님은 아들이 스스로 다음 길을 찾아낼 거라 믿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달콤했던 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려는 그때, 아버지가 ‘같이 가자’라며 차키를 집어 들었다. 기분 좋게 ‘오케이~’를 외치고 아파트 복도로 나섰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제안이 그저 양 손 가득 짐을 들고 버스를 타러 가는 아들이 안쓰러워서인 줄만 알았다. 차에 올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안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함께 차를 타고 움직이는 그 시간 동안 아들과 대화가 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그 전에도 이야기할 기회는 몇 차례 있었다. 그렇지만 평소 살갑지 못한 아버지는 다가가기 서투른 탓에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 아들이 떠나는 마지막 날, 아버지는 어렵사리 기회를 잡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첫마디는 “네가 부럽다”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빠는 그만두는 결정을 할 수 있는 네가 너무 부럽구나. 아빠는 스물일곱에 결혼을 했어. 네가 예상보다 빨리 생겨서 그랬지. 사실 아빠도 그때 뭔가 다른 일에 도전해 보고픈 마음이 있었는데, 가정이 생기면서 그럴 수 없었어. 돈이 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이것저것 해야 했지. 너 때문이야 너 때문.”


아버지는 멋쩍게 웃었다. 평소 표현에 서툰 아버지라는 걸 알기에 조금은 놀랐다. 그리고 동시에 감동이 밀려왔다. 가슴 한 구석에선 먹먹한 감정도 피어올랐다.


돌이켜 보면 아버지는 지금까지 일을 쉰 적이 없다. 위기도 수차례 있었다. IMF로 잘 다니던 직장을 잃었다. 이후 연 식당이 잘 되지 않아 고민하기도 했다. 한창 식당이 자리를 잡았을 때는 건물주가 무리한 요구를 해 결국 장사를 접어야 했다. 그럼에도 쉬지 않고 새로운 직장을 구해 지금까지도 일하신다.


아버지도 아버지가 원하는 삶이 있었을 테다. 돈을 벌기 위한 일보다는 적성에 맞는 무언가를 찾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가정을 위해 정말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오셨다.


아버지는 새 시작을 앞둔 아들이 당신보단 더 자유롭게 삶을 설계하길 바라셨나 보다. 이어 “이제 서른이면서 뭐가 그렇게 걱정이냐. 그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봐라. 5년 그렇게 보내도 고작 서른다섯이다”라며 큰아들을 응원했다. 그리고 차 안에는 잠시 침묵이 드리웠다.


‘좋은 대화’는 눈을 마주 보고 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눈을 보고 이야기를 해야 서로의 진심을 알 수 있고, 보다 정확하게 하고픈 말을 전할 수 있다. 앞을 보고 운전하던 아버지는 내 눈이 아닌 앞을 보고 이야기했다. 나 역시도 조수석에 앉아 그저 앞을 바라보며 듣고 있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앞을 바라본 ‘나쁜 대화’였지만, 세상 그 어느 대화보다 진솔했고 따뜻했다.


오후 2시 뜨거운 햇볕 아래를 달리며 들은 아버지의 응원. 마치 내 마음에 엄습했던 불안함을 내쫓아주는 빛 같았다. 30대라는 새 시작을 앞둔 내 인생 앞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떤 길을 마주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해보고 아니면 또 잠시 쉬면 된다. 다른 길도 얼마든지 있다. 그때 또다시 출발하면 됐다. 중요한 건 무엇이든지 해보는 것이었다.


두 부자는 조용히 차 앞 유리를 통해 펼쳐진 고속도로를 바라봤다. 다른 차들이 꽤 있었지만 무리 없이 나아갈 수준이었다. 차 안 어색한 분위기는 이윽고 음악이 나오면서 조금 누그러졌다. 음악에 맞춰 아들은 고개를 움직였고, 아버지는 핸들 위 손가락을 두드리며 리듬을 탔다. 그리고 둘은 나란히 차 앞 유리 쪽에 시선을 뒀다. 인생 3막 출발선에 선 아들. 그리고 그 옆에서 아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응원하는 아버지가 함께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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