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로 주문해보기

일상에서 실천해보는 사소한 용기

by 김광훈 Kai H

오래 전 홍대 앞 골목 국수 집에서 당시로서는 드물게 주문하는 기계를 쓰고 있어 이채로웠다. 겨울 새벽에 따스한 멸치 국물을 '폭풍흡입'하면 따스함이 전신을 감싸고 돌았다. 곱빼기를 주문해도 곱빼기 값을 받지 않던 정이 훈훈했던 그곳이 생각나는 밤이다. 이후 최저 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더니 이젠 업종 관계없이 가게마다 대면 주문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기계로 주문하는 것이 따스한 인간미를 느낄 수 없다고 하는 이들이 있지만, 장점도 많다.


휘트먼이 풀잎(Leaves of Grass)에서 말한 '사람의 일손을 더는 기계(Labor-saving machine)'로서의 역할 외에도 고객의 구미에 맞춰(customized) 주문을 할 수 있어 좋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에서 샐리가 매우 까다롭게 주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대체로 고객 서비스가 잘되어 있는 미국에서도 눈에 띌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얼마 전에 패스트 푸드점에서 주문한 음료에 얼음이 들어 있었다. 미처 빼달라는 말을 못했다고 하자 직원으로부터 다음부터는 미리 말해달라고 약간의 핀잔을 들었다. 여름에도 얼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른 봄이었으니 당연히 얼음이 없을 줄 알았다. 그 점포는 대면 주문 밖에 할 수 없는 곳이었지만 기계로 주문하면 이런 착오가 없으니 편리한 점도 있다. 혹 실수로 다른 것을 주문했다 한들 전적으로 내 잘못이니 누굴 원망하랴. 모래 주머니를 차고 달리기를 연습하는 육상 선수의 심정으로 불편한 줄 알지만 대면과 기계 주문이 모두 가능할 때는 의도적으로 기계를 이용한다. 나중엔 삼성전자의 반도체 제조 공정처럼 패스트 푸드도 전자동으로 생산되어 고객에게 전달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결혼식장에 운동복 차림으로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