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초만 해도 산책하는 길에 보이던 고양이가 돌연 사라졌다.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엄동설한에 풍찬노숙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는데 추위도 추위지만 나뭇잎이 다 떨어져 아무리 <그래니급 고양이>라 해도 사생활이 전혀 보장이 안 되는 곳에 오래 머무리라고 기대하진 않았었다.
고양이가 없을 줄 알면서도 산책하면서 그 작은 덤불로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매번 허탕이었다. 지난 크리스마스 다음 날 철쭉나무 덤불 옆 자동차 바퀴 옆에서 그 고양이를 한 번 보았었을 뿐 그 이후 행방이 묘연했다. 말이라도 통하면 지하 주차장에 가서 추위를 피하라고 할 텐데 내가 동물의 언어를 모르니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게 안타까웠다.
모처럼 영상의 포근한 날씨를 보인 오늘, 뜻밖에도 자동차 아래 발밑에서 고양이가 나를 만나면 예의 부르는 소리를 냈다. 시에서 처럼 밖에서 걸을 때 <데이지 꽃송이를 짓밟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양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발아래를 보아야 할 듯싶다. 꼬리가 올라간 것으로 보아 기분이 좋다 또는 경계를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혔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고양이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다.
재개발하는 동네의 길고양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깨어진 유리 조각에 연약한 발바닥이 상처를 입기도 하는 등 강추위 속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TV 뉴스를 보며 이 고양이 생각이 났다. 최근 녹은 눈에 털이 지저분해졌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길고양이 답지 않게 깔끔하게 잘 관리하고 있었다. 요즘 세 자녀를 출산한 40대 초반의 여배우가 믿을 수 없는 동안 외모로 화제가 되는 걸 보면서 이 고양이도 사람이었다면 충분히 그런 반열에 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 전문가들이 얘기해서 나이 많은 암고양이 인 걸 알았지 얼굴에 주름 하나 없어 외모만으로는 나이를 알 수가 없었다.
기지개를 켠다거나 재빠르게 움직이는 걸 보니 컨디션이
나빠보이지 않았다. 저 정도면 올겨울나는 건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구나 밖에서의 생활에 온갖 경험과 지혜를 축적한 베테랑 고양이가 아닌가? 지금과 같은 정도의 고양이에 대한 애정과 이해 정도만 있었어도 예전에 <캣츠> 공연을 훨씬 더 재미있게 보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문득 내한 공연 때 무대 위 바로 내 앞에서 <메모리>를 부르던 여주인공의 노래가 듣고 싶어 졌다.
길고양이라고 다 같은 길고양이가 아니다. 집 근처엔 영구 공공임대에 사는 고양이도 있다. 네 채의 고양이 집이 있고 좀 큰 평형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사이좋게 한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식량과 식수가 끊임없이 공급되고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칼라로 인쇄된 경고문까지 부착되어 있다. 고양이 집 입구엔 투명 거적문이 설치되어 있어 추위도 막아주고 있다. 물론 리본 형태로 되어 있어 공기가 잘 통할뿐만 아니라 드나들기도 편리하다.
우리 고양이는 이런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거긴 그 고양이들의 영역이라 좀처럼 가는 일이 없고 따라서 그런 <호화시설>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어찌 보면 다른 동네의 사정을 다 알다 보니 세계 10위권으로 경제력이 성장했는데도 행복 순위는 하위권 인지도 모르겠다. 행복이 경제력 순은 아닐 테지만, 상당한 역할을 하기도 하는 데도 말이다.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되었지만 사람 살기도 힘든 세상에 길고양이까지 돌볼 여력이 있느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행성의 어엿한 동반자인 연약한 동물이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데 외면한다는 건 나름 살만한 여건을 갖춘 인간의 도리는 아닐 듯싶다.
사실 우리 고양이는 1년 전에 등에 큰 부상을 당해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오랜 운행 후 갓 주차한 자동차의 엔진룸에 들어갔다가 등에 반뼘 크기의 큰 상처가 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상처 난 부분의 털이 모두 사라져 빨간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고 칼에 베인 듯한 깊은 상처가 몇 달이고 아물지 않았었다.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
고양이가 부상을 입은 지 얼마 안 된 날 밤늦게 산책하다 우연히 그걸 보았는데 자정에 가까운 시간인 데다 어떻게 구호해야 할지 몰라 잠시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제사장>처럼 모른 체하고 지나갔다. 고양이의 처연한 눈길과 울음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었다. 며칠 후에 어떤 <선한 사마리아> 남자를 만났는데 그가 먹을 것은 물론 고양이 등에 약을 발라주고 물에 치료약도 타 주었다는 얘기를 했다. 동네 아주머니에게 고양이를 돌봐 달라는 부탁도 했다고 했다.
이런저런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메모리>가 될 것이다. 늘 혼자인 우리 고양이는 발에 전해지던 감촉, 따뜻한 사람들, 떠오르는 태양과 아파트의 가로등, 뭐하느라 바쁜지는 모르지만 아침저녁으로 분주하게 드나드는 차속의 인간들을 눈 속에 담거나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어디에선가 새로운 아침이 오는 정경과 마침내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철쭉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