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테르가 로테와 멋진 와인 바에 갔다면

by 김광훈 Kai H


논산 훈련소를 거쳐 평택 교육대에서 기본 교육을 받고 자대에 배치받은 지 얼마 안 된 이등병 때다. 하루는 막사에서 쉬고 있는데, “막사 전체 차렷” 하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보니 대위 계급장을 단 군인과 또 다른 군인이 막사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파악하기도 전에 그들이 내 앞에 잠시 멈춰 서며 물었다. “현재 생활에 만족하나?” 질문한 장교의 목 근처 계급장을 재빨리 확인해 보니 검은색의 별이 두 개나 보였다. 스타즈 앤 스트라 이프지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존슨 사단장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전입 신고할 때의 대대장(중령)이 만나본 군인 중 최고위직이었는데 순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만족스럽습니다.”라고 대답해버렸다. 실은 아직 부대 생활에 적응이 덜 된 때이고 미군 동료에게 불만이 있을 때지만 사단장에게 털어놓았다가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판단해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다소 엉뚱한 발상이기는 하나 만일 존슨 장군이 그날 점심으로 먹은 바비큐 치킨이 맛있었느냐고 물었다면 다소 편안한 상태에서 대답했을 것이다. 예전에 국에서 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처음 만난 남녀가 다음 데이트에 성공하기 위한 최고의 비결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피자의 토핑이 무엇인가 묻는 것’이었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비결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젊은 베르테르가 로테를 여러 차례 만났음에도 함께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사실상 음식 맛을 결정하는 토핑처럼, 사소해 보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에 무심했던 탓 아닐까. 당시 외식산업이 오늘날과 같이 발달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책 어디를 봐도 그가 로테와 근사한 와인 바에 갔다거나 맛있는 예거 슈니첼(Jaegerschnitzel)을 같이 먹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기껏 그녀에게 준 거라곤 오렌지 몇 개뿐이다. 그의 속내를 전달하려는 시도는 죽음에 가까운 시점에 이르러서야 겨우 활발해질 뿐 제삼자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소통은 베르테르의 일방적인 방식에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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