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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Nov 03. 2022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동네
아저씨의 제언

풀 프루프(foolproof) 대책이 필요하다


해병대나 ROTC 출신도 아닌데, 요즘에는 뜸해졌지만, 매우 특이하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년 넘게 군대 모임을 가져왔다. 함께 근무했던 거의 전원인 20여 명의 예비역 군인들이 모이는 이유는 용산이나 부산이 아닌 판문점 근처에서 청춘시절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 상대적으로 <고생>했다는 공감대 때문일 것이다. 다들 열심히 살았는지 사회 경제적으로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았다. 절반 정도는 대기업 고위 임원을 역임했고 현직 유명 대기업 대표도 있으며 전직 국회의원으로 현 정부 고위 인사도 있다. 특이하게도 전국적인 인지도가 있는 산업 전체의 노조위원장 출신도 있고 몇몇은 메이저 언론사 간부나 대기업 부장급으로 퇴임했으며 나머지는 자기 사업을 하고 있다. 지금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지만, 능력과 덕이 못 미치는 데다 운과 노력도 부족했던 나만 평범한 동네 아저씨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보다 영향력이 큰 이들이 왜 이번 이태원 참사를 보고 언론에 아무런 제언도 하지 않나 궁금했는데 한편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말 한번 잘못했다가 자칫 여론의 표적이 되어 자신의 직위가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오히려 사회적 지위나 영향력이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는 나같은 사람이나 한 마디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은 예전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첨단 기기나 아이디어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런 일본이 우리나라 웬만한 사무실에선 수십 년 전에 사라진 팩스를 사용하고 있는 등 변화에 느리고 둔한 민낯이 자주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행정이나 정치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행정 분야가 보수적인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그걸 감독하고 이끌기 위해 선출된 집행부가 혁신이 없어서는 안 된다.


일본은 항상 우리가 반면교사나 타산지석이 되어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으나 이번에는 우리 사태를 교훈 삼아 발 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단 위에서 전체적인 군중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경찰이 계속 안내와 통제를 하면서 보행을 절대 멈추지 말라고 했다. 비상시엔 원시적인 방법이 통하는 건 맞지만, 첨단이 전혀 안 보이는 일본의 대응을 보고 그들의 앞날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늦은 생각이지만, 이태원 그 골목에 문자와 영상으로 위험을 알리거나 흐름을 조절하라는 전광판을 머리 위에 설치해 안내를 계속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음악이나 사람들의 소리가 커 안내 방송이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문자는 주변의 소리가 커도 다 인식할 수 있지 않은가. 이게 필요했던 이유는 대열 앞과 뒤의 상황을 알려주는 커뮤니케이션의 부재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던 한 원인으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한 언론은 미국 대도시의 핼러윈 행사가 질서 정연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여 주며 참가자들의 인터뷰도 실었다. 미국 주요 언론사의 댓글을 보면 한국 같은 앞선 나라에서 참으로 안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 주된 반응인 것 같다.  요즘은 기자들도 예전보다 분야가 특화되어있어 전문성이 높아졌지만, 아무래도 생존이 걸려 있는 기업만큼 치열한 고민과 절박함을 가질 수 없어 창의적인 안을 제시는 못하는 것 같다.


미국은 한 없이 자유로운 것 같지만, 미국의 대도시 등에서 차를 몰고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경찰관 등 공권력의 권위나 위상이 우리와 다른 것 같았다. 그런 분위기를 처음부터 감지한 나는 경찰관이 주변에 없어도 STOP이라고 바닥에 쓰여있는 곳마다 우선 멈춤을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와 문화가 다르니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수는 있지만, 그대로 적용하면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또 그런 미국도 의회 난입 사건에서 보듯이 질서도 일반적인 상황에서 유지되는 것이지 비상상황에선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참사가 난 그 골목의 면적을 얼추 계산해 보니, 초대형이 아닌 일반 대형 아파트 한 세대 정도의 크기다. 그 공간에 3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었으니 아찔하다. 거구의 씨름선수도 상대방에게 몸이 들리면 맥을 전혀 못 추듯이 전철이나 버스에서 혼잡이 심해 같은 상황이 되면 아무런 도리가 없다. 다만, 교통 기관은 벽이 있어 넘어질 위험이 적기에 그런 사고가 잘 안나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뾰족한 아이디어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느냐고만 할 게 아니다. 기업에 이런 과제가 떨어졌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반도체 공정은 사실상 초미세 먼지와의 싸움이다. 클린룸에서의 작업은 필수다. 우리가 통상 10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입자를 미세먼지, 2.5 마이크로를 초미세먼지로 관리하지만, 반도체 공정에서의 관리와 비교하면 애교 수준이다. 반도체에서는 청정도 관리가 상대적으로 엄격하지 않다는 후공정인 패키징에서도 0.5 마이크로 우리가 초미세 먼지라고 하는 입자 크기의 5분의 1 수준이고, 이미지 센서에서는 0.3 마이크로로 관리한다. 1평방 피트에 0.3이나 0.5 마이크로 초미세 먼지가 5개 이내를 초과하면 안 된다. 


잘 상상이 가지 않을 테니 예를 들자면 여의도에 야구공 하나 정도가 있어야 하는 청정도의 세계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수 있다. 이렇다 보니 공조는 기본이고 클린룸 전용 청소도구로 주기적으로 청소하고 있으며 클린룸에 반입되는 물품을 극도로 통제하고 있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니 나중에는 클린룸 크기 별로 동시 입장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을 통제했다. 사람도 당연히 이물질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클린룸에 입장할 때는 겉옷은 당연히 지정된 클린룸 전용 복장에 속옷도 갈아입어야 한다. 또한 정전기를 일으키는 속옷도 안된다. 디바이스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당연히 인원을 어떻게 통제하느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우리처럼 경찰을 더 배치하면 해결될까. 그때도 분명 보수와 진보의 대규모 시위가 있을 텐데 거긴 그냥 방치해도 되는가.  한 동안은 이런 행사에 경찰력을 더 집중하고 사람들도 경각심이 생겨 조심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방심하기 마련이다. 사람의 기억이나 자율에 맡기면 품질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은 풀 프루프(fool-proof) 시스템을 마련해 둔다. 


정해진 인원에 도달하면 더는 입장이 불가능하게 자동으로 진입이 차단되고 클린룸 내의 인원이 밖으로 나오면 다시 그 수만큼 진입이 허용되도록 장치를 해두었다. 물론 클린룸 내에는 화재 등 긴급 시에는 피난할 수 있도록 별도의 탈출구가 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 사람 감지 센서의 힘이다. 이런저런 선심성 복지나 목적도 불분명한 시민단체에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의 혈세를 쓰면서 그것의 천 분의 일의 비용도 안 되는 이런 걸 왜 안 만드는가. 구체적인 방안은 전문가들의 몫이겠으나, 일반적인 클린룸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작은 이태원 골목에 이런 장치를 큰 행사 때만이라도 설치하면 사람들의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재난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장치를 설계할 때는 그 골목에 있는 클럽이나 가게에 가는 손님들 수, 만일 그 행사 기간 중 가게에 화재가 났을 때를 대비한 적정한 인원 산출 및 탈출 방안 등 세심하게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그 골목에서 그날 가게 중 어느 하나에 큰 화재가 났더라면 참사는 몇 배 더 커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새로운 시스템을 잘 안지키거나 작동하지 않을 거라 예단하지 말고 치밀하게 만들어서 필요성과 장점을 잘 역설하면 달라진다. 코로나를 겪어봐서 알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일단 규정만 잘 만들어 놓으면 진짜 잘지키는 선진국 국민이다. 


미국이나 일본도 안 하는데 왜 우리가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 있다. 이들 나라는 전체적으로는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이 맞지만, 우리가 앞선 분야와 비교할 땐 형편없는 후진국이고 의식도 한참 뒤져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냥 국수주의적 생각(요즘 유행어로 국뽕)에서 하는 말이 아니고 각계각층의 그들과 30년 넘게 거의 매일 일하고 식사도 같이 자주 하면서 관찰한 결과다. 다른 나라 따라 할 생각하지 말고 창의적이고 첨단 국가의 국격에 맞는 창의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이 정도의 참사에는 지구 밖 외에는 어차피 벤치마킹할 곳도 없어 트리즈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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