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취학 연령 조정에 따른 논란을 보고
학창 시절 시사영어 시간에 제3의 물결이라는 앨빈 토플러의 저서를 공부한 적이 있다. 그중 생각나는 것이 Single cause interest group이 많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자고 나면 생겨나는 시민단체를 보면서 우리나라에 딱 맞는 예상이 아니었나 싶다. 어린이 취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춘다는 계획 발표에 전국이 시끄럽다. 표면적으론 아동 발달 상황을 얘기하고 또 근거도 있겠지만, 해당 분야 문외한인 일반인의 관점에서 볼 때 관련 산업과 직업들에 당장 미치는 영향과 이해관계도 이런 반발의 한 원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생각은 자유니까. 오래된 얘기지만, 입학과 관련해 1980년 여름에도 이와 비슷한 종류의 사건이 있었다.
대학 입시일을 불과 3개월 남기고 본고사를 전격 폐지하고 예비고사 성적(내신 성적도 약간 반영되었던 것 같다)만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예비고사보다는 난이도가 훨씬 높고 점수 비중도 큰 본고사에서 당락이 결정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취학 연령 낮추는 것과 마찬가지로 큰 변화였다. 지금 상황으로 비유하자면 당장 몇 달 뒤부터 서울시내 대학교에 성적 순이 아닌 추첨으로 입학생을 배분하겠다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변화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실감할 수 없겠지만, 요즘이라면 이 정도의 변경이라면 정권도 바뀔 사안일 수 있다.
나의 당시 성적을 보면 영어는 상위 1% 이내, 국어는 상위 5% 정도, 수학은 하위 30% 실력으로 너무 기형적인 구조였다. 다행히 K대와 J 대는 문과에 한해 수학 대신 국사를 본고사에서 선택할 수 있어 나에겐 완벽한 제도로 보였다. 하지만, 갑자기 제도가 바뀌어 이런 계획은 보기 좋게 물거품이 되었다.
본고사가 몇 달 더 유지되었어도 결국 비슷한 수준의 다른 학교로 진학했겠지만, 이로 인해 결혼, 직장 등 많은 것이 달라졌다. 작은 키에 커피 값도 없어 데이트는 꿈도 꾸지 못하던 내가 어쩌다 당시엔 일반적이지 않았던 캠퍼스 커플이 되어 결혼도 했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에 진학했더라도 내 주변머리와 심성에 비추어 볼 때 지금보다 사회 경제적으로 더 출세했을 것 같지 않으나, 인생행로가 결정적으로 변경된 것은 확실하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니, 대통령 노릇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닌 것 같다. 앞으론 대통령 서로 안 하겠다고 해서 면봉이 불티나게 팔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스갯소리지만, 이러다 나한테까지 차례가 오지 않을까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