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그룹 대졸 공채 시험에 <그냥> 응시한 적이 있다. 졸업을 아직 한 학기 남겨둔 데다 입사 후 경쟁이 치열한 대기업보다는 중견 그룹에 입사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시험 삼아 본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필기에 합격하자 내친김에 면접까지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시험이 쉽기도 했지만 영어 공부에 한참 재미를 느꼈던 때라 오답이 아마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필기(영어 I, II)를 잘 보았다. 사장단 면접과 임원 면접까지 치렀는데, 인사부 담당자에 의하면 면접은 경쟁률이 1.1:1이어서 특별한 하자만 없으면 합격한다고 했다. 하지만 난 낙방했다. 면접관이 졸업 예정 증명서와 성적 증명서는 왜 제출하지 않았느냐고 묻기에 코스모스 졸업이라 아직 한 학기가 남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떨어진 것으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입사 동기가 될 뻔한 책임자를 회사에서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나 내가 낙방한 이유를 좀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에 의하면 입사 후 꽤 오랫동안 월 근무 시간 중 잔업만 보통 200시간을 넘기기도 했다고 했다. 어쩐지 2차 임원 면접 때 면접관이 왜소해 보이는 내게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끈질기게 질문을 하는데 그의 우려를 불식시킬 정도로 명쾌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때도 어렴풋이 짐작하기는 했지만, 당락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못했다.
요즘 주간 최대 정규 근무 시간 60시간~69시간을 두고 정치권에서 최대 쟁점으로 부각하는 것을 보면서 예전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