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전야

마닐라에서의 오래 전 기억

by 김광훈 Kai H

어제 마닐라 시내 한 복판에서 여성 노숙자가 하수구 맨홀에서 나온 사진이 세계적으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걸 보고 오래전 일이 생각났다. 미국인 고객과 처음 마닐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출국 전 마닐라도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여자 후배 직원의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며 필리핀에 도착해 마닐라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마카티 대로를 걸었다. 그곳은 명성에 걸맞게 화려했고 고층 건물이 즐비했다.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여성들이 유독 많아 고객에게 “미인이 너무 많아 한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하기 힘들다”는 농담을 던졌더니 고객이 그건 서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한참 패기만만한 과장 시절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고객의 친구가 필리핀 공장장을 하고 있어 그가 내준 대형 벤츠를 타고 마닐라 시내를 지나는 동안, 내가 지프니를 타보고 싶다고 하자 "통조림 캔 속의 정어리가 되고 싶냐"며 그가 정색을 했다. 그 번화하던 마닐라 시가지는 중심지를 조금 벗어나자마자 우리나라의 70년대 변두리 빈민촌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국부의 크기가 다르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마닐라 곳곳을 둘러보며 미국 고객이 했던 말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미국이 아낌없이 쏟아부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한국하고는 40년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나중에 미국이 필리핀을 미국 자본주의의 쇼우케이스로 만드려 작심하고 천문학적인 달라를 퍼부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가 탄식하며 내뱉은 말을 들으면서 인구도 많고 상당수의 인구가 영어도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만큼 모든 면에서 여건이 좋은 나라인데 왜 이렇게 된 걸까 생각해 보았었다.

후배와 미국 비자 문제

내가 마닐라 출장에서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여자 후배가 미국 출장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유명 기업은 아니지만 직원이 일만 명정도되는 반도체 기업에서 대리로 일하고 있고 서울대 영문과 출신이었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10%도 안되던 때라 우리나라에선 엘리트로 여겨질 만한 위치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자가 나오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당시 느꼈던 먹먹한 마음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20년쯤 지났다. 필리핀 고객으로 전 직장 후배였던 이와 재회했다. 그는 갑의 입장이었지만 나를 깍듯이 대했다. 그가 나를 그렇게 대한 데는 내가 선배이기도 했지만 한국인이라는 점도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필리핀이 일본과 함께 아시아의 양대 국가였던 시절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는 이후 몰락한 필리핀인으로서의 패배감과 자괴감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한때 아시아의 중심이었던 필리핀은 지금도 그 과거의 영광과 몰락을 동시에 떠안고 있다. 투표를 하루 앞두고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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