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자주와서 미안합니다

by 김광훈 Kai H

늘 겪는 일이지만, 대권의 향방을 놓고 각축전이 예사롭지 않다. 이런 때일수록 소박한 소망이 그립다. 이를테면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의 불빛이라도 되는 것 말이다. 어쩌면 이 일만 해도 세상에 왔다 간 보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곤 한다.



약 20년 전 어느 늦은 밤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 있었던 일이다. 고객과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늦게 귀가하면서 교외에 있는 화훼단지의 한 가게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았다. 갑자기 사무실 책상 위에 작은 화분을 하나 놓으려던 생각이 나 그 점포 앞에 차를 세웠다.



가게 주인인 듯한 중년 여성이 나를 맞이했다. 3000원짜리 화분 하나를 바로 샀다. 그렇게 시작한 첫 거래가 계속 이어졌다. 승진철에는 호접란, 봄에는 프리지어나 달리아, 분갈이 흙을 사곤 했다. 물론 일 년에 몇 번 들르는 정도니 유망한 고객은 아니었다. 아무튼 단골이 되다 보니 손님이 드물 때는 서로 근황을 묻는 정도의 친분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필자에게 감사할 일이 있다고 했다. 구매력도 빈약한 데 뭘 감사할 게 있느냐고 했더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20년 전 암 투병에서 극적으로 생존해 지인의 소개로 화원을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가게를 연 지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 저녁, 폭우가 쏟아지자 주변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자신만 밤늦게 열고 있었다. 다른 가게와 달리 그동안 손님 하나 없던 자신은 그날도 밤늦도록 마수걸이도 못한 채 간절한 기도만 올리고 있었다. 기도의 응답을 받았는지 그 늦은 시각에 필자가 돌연 나타나 작은 희망의 불빛을 봤고 그로 인해 20년을 버틸 수 있는 작은 힘이 됐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차로 5분쯤 걸리는 곳엔 역시 20여년 전 5평 규모로 시작해 지금은 50명의 직원을 둔 음식점이 있다. 서울과 인접한 곳에 식당 건물과 주차장을 포함해 천여평의 부지를 가질 만큼 성장했다.



여성 대표는 아직도 필자가 포장 주문한 주꾸미를 손수 조리하곤 한다. 일 년에 적어도 30번은 이 식당에서 포장을 하곤 하니, 많은 직원이 필자를 알아본다. 가끔 “너무 자주 와서 미안합니다”라고 실없는 농담을 하면 “아녜요, 찾아 주셔서 감사하죠”라고 화답하곤 한다.



이렇게 잘되는 음식점도 있지만, 사업이 어려운 점포도 자주 눈에 띈다. 동네 큰길 사거리 음식점 자리, 지난 10년간 여러 번 업종이 바뀌었다. 주인과 눈이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간혹 가게 안을 보곤 하는데 식사하는 손님을 본 적이 없다. 포장 손님으로 근근이 버티는 게 아닌가 싶다.



병원은 그래도 괜찮아 보인다. 치과 몇 곳과 내과, 정형외과 등은 건재하다. 사거리 인근에 있던 주요 은행 지점들도 소리 없이 사라지고 길 건너에 ATM만 남았다. 다행히 은행 지점 하나와 우체국이 있어 당장 금융 사막은 막았지만 얼마나 버틸지 모를 일이다. 필자같이 젊은 축에 속하는 시니어는 그래도 모바일 뱅킹으로 모든 걸 처리하지만, 동네 지점에 가보면 어르신들로 가득 차 있다.



그날 밤 폭우 속 작은 화분 하나에서 시작된 인연처럼, 누군가의 일상에 조용히 스며드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진짜 보람일지 모른다. 세상이 요란할수록, 내 이름도 없이 행하는 작고 따뜻한 역할 하나가 어쩌면 누군가의 20년을 견디게 할 수 있다. 거대한 담론에서 하루의 식탁까지, 이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그런 작은 불빛 하나가 아닐까.



출처 : 중소기업뉴스(http://www.kbiz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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